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4)
감
― 허영자
이 맑은 가을 햇살 속에선
누구도 어쩔 수 없다
그냥 나이 먹고 철이 들 수밖에는
젊은 날
떫고 비리던 내 피도
저 붉은 단감으로 익을 수밖에는
소설이나 수필과 달리, 시는 젊은이의 갈래라 했다. 시적 상상력이 풍부한, 젊은 영혼의 노래라는 말이다. 그런데 근래에는 묘하게 나이 든 시인의 시가 가슴에 잘 꽂힌다. 내가 나이를 먹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시인의 작품이 그만큼 원숙해서일까.
허영자의 시 <감>은 여섯 행으로 인생을 다 말하고 있다. 어쩌면 저렇게 익어가는 단감을 통해 세월의 흐름에 순응하는 삶을 읽어낼까. 그래서 시인이 아니겠는가.
첫 3행은 가을 햇살 속에서는 어느 누구라도 나이 먹고 철이 든다는 것이다. 가을은 결실의 계절이 아닌가. 나이를 먹는 것은 세월이 흐르는 것이요, 철이 드는 것은 당연히 인생의 어떤 결실이리라. 나머지 3행은 앞 3행을 구체화한다. 젊은 날, 방황하고 갈등하고, 어쩌면 반항과 거부하는 행동을 보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떫고 비리던’ 젊은 날도 세월이 가면 익게 된다. 바로 ‘저 붉은 단감’처럼 말이다. 3행과 6행 끝머리에 ‘~(할) 수밖에는’은 언뜻 보면 체념으로 읽힌다. 그러나 오히려 그만큼 세월에 순응하는 태도일 것이다.
문득, 진갑을 넘겼음에도 나는 과연 ‘단감’으로, 제대로 익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아직 철이 더 들어야 하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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