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17)
동백(冬柏)
― 정훈
백설(白雪)이 눈부신
하늘 한 모서리
다홍으로 불이 붙는다.
차가울사록
사모치는 정화(情火)
그 뉘를 사모하기에
이 깊은 겨울에 애태워 피는가.
정훈의 시 <동백(冬柏)>은 동백꽃을 시간적, 공간적, 촉각적, 시각적 이미지로 잘 형상화한 수작이다.
‘백설’ – 겨울이다. 시간이 그렇다는 것이다. 여기에 겹쳐서 ‘백설’ - 흰 눈이라는 색채까지 강조된다. ‘하늘 한 모서리’ - 공간적 배경이지만 거기에 흰 눈과 대비되는 푸른 하늘빛이 겹쳐진다. 시간과 공간적 배경을 말하면서도 거기에 이렇게 시각적인 색채까지 뚜렷하게 대비해 놓았다. 그리고는, 동백이 핀 곳이 뜨락이나 길 옆 혹은 뒷곁이 아니라 ‘하늘 한 모서리’란다. 시인의 공간 감각은 우주를 넘나든다. ‘다홍’ - 붉은 빛은 다시 시각적 이미지이다. ‘차가울사록’ - 촉각적인 이미지이다.
그렇게 동백꽃을 제시해 놓고 화자는 그 꽃을 불로 본다. 바로 ‘사모치는 정화(情火)’이다. 정에 불이 붙으면 어떤 느낌일까. 구체적으로 알 수는 없으나 그냥 가슴으로 느낄 수는 있다. 마지막으로 화자는 꽃에게 묻는다. ‘그 뉘를 사모하기에 / 이 깊은 겨울에 애태워 피는가’라고.
동백꽃이 피는 것은 식물의 성장 과정의 당연한 흐름이다. 그러니 꽃이 특정 대상을 사모하여 겨울에 애태워 필 리는 없다. 그렇다면 그렇게 바라보는 화자의 마음이 그런 것이리라. 바로 감정이입이다. 즉 화자는 이 겨울, 흰 눈 속에 누군가를 사모치게, 애태워 그리워하고 있다. 결국, 화자의 누군가를 사모하는 마음이 ‘동백꽃’으로 형상화되었을 뿐이다.
흰색과 푸른색 그 사이에 붉은 빛의 동백꽃. 차가울사록에 이어지는 불. 여러 이미지들이 이렇게 대조가 되는데 그 한가운데에 겨울의 추위 속에 피는 동백꽃의 정열을 부각시켜 바로 화자의 마음을 그려낸다. 감정 이입된 독백을 통해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화자의 정열이 마치 자신이 아니라 꽃이 그러한 것처럼 ‘이 깊은 겨울에 애태워 피는가’ 하는 영탄적 설의(設疑)로 대신한다.
시가 참 깔끔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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