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98)
진달래 꽃
— 최문자
괜찮아, 괜찮아 뒷산에 불 지른 것 불이 나를 지나 내 푸른 노트 다 태워 버린 것 가장 찬란한 사랑은 언제나 다 타고 난 가루에서 빛나는 것 한 번의 뜨거움으로 죽도록 꽃은 가루가 되겠지 한 사나흘 비 뿌리는 동안 꽃이 물이 되는 거 그 물이 불을 끄고 돌아서서 다시 푸른 노트가 되는 것 괜찮아, 괜찮아 뒷산에 불 지른 것 불 지르고 돌아서서 진분홍 물이 되는 거 알 수 없는 그 고단했던 사랑
꽃잎 날리는 모든 이별
괜찮아
최문자의 시 <진달래꽃>은 인터넷 게시판들을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눈에 들어온 작품이다. 그런데 읽자마자 감탄사가 나왔다. 좋았다. 그냥 좋았다. 산문으로 된 부분도 좋았고 마지막 두 행 운문도 좋았다. 아니 그 두 구절이 결구가 되어 구성까지 좋았다. 70을 훌쩍 넘은 분에게 이런 감성이 있다니. 아니다, 어쩌면 중년에 쓴 것인지도 모른다. 하기는 불혹에 시인으로 데뷔를 한 분이니……
첫 구절부터 ‘괜찮아’라 한다. 그것도 반복을 해 가면서. 무엇이 괜찮다는 것일까. 주된 것은 ‘뒷산에 불 지른 것’과 ‘불이 나를 지나 내 푸른 노트 다 태워 버린 것’이 괜찮다는 말이다. 여기서 ‘뒷산’과 ‘푸른 노트’는 어쩌면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아니 화자는 뒷산을 푸른 노트로 보고 있는데, 진달래꽃이 피면서 뒷산은 불을 지른 것 같고, 당연히 뒷산인 내 푸른 노트를 다 태워버렸다. 그래도 괜찮다는 것이다.
이어서 왜 그런지가 나온다. ‘가장 찬란한 사랑은 언제나 다 타고 난 가루에서 빛나는 것’이기 때문이란다. 즉 진달래꽃이 활짝 펴서 뒷산을 다 태워버린다 해도 오히려 그 안에서 ‘가장 찬란한 사랑’이 빛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한 번의 뜨거움으로 죽도록 꽃은 가루가’ 될 것이란다. 사랑의 불길에 타버리면 꽃은 가루가 된단다.
다시 ‘괜찮아’로 연결되는 것은 ‘한 사나흘 비 뿌리는 동안 꽃이 물이 되는 거’와 ‘그 물이 불을 끄고 돌아서서 다시 푸른 노트가 되는 것’이다. 진달래꽃이 피어 있는데 비가 내리면 꽃은 물이 되고 그 물이 불을 꺼서 다시 푸른 노트가 된다. 그래도 괜찮다는 것이다. 이어서 다시 ‘괜찮아’가 나오고 앞의 내용이 축약되어 반복된다. 그런데 ‘불 지르고 돌아서서 진분홍 물이 되는 거’가 괜찮다며 ‘알 수 없는 그 고단했던 사랑’도 괜찮단다. 맞다. 진달래꽃은 불이요 그 불은 불같은 사랑이 된다. 비록 ‘알 수 없는’ 것이었고 ‘고단했던’ 사랑이지만, 진달래꽃 피듯이 활활 불타올랐던 사랑이다.
그러니 진달래 ‘꽃잎 날리는 모든 이별’은 ‘괜찮아’라 말할 수 있는 것이리라. 그런데 어찌 ‘뒷산’을 ‘내 푸른 노트’라 생각했을꼬. 하긴 뒷산이 그냥 일반적인 산이라면 ‘내 푸른 노트’는 시인의 마음을 기록하는 것이 분명하다. 당연히 시 속의 ‘불’은 진달래꽃이며 이는 다시 ‘사랑’으로 승화된다. 시 속에 표현된 내용을 그대로 따라가면, 꽃이 피고 난 후 (불에 타서는) 다시 가루가 되고 한 사나흘 비 뿌리는 동안 꽃은 물이 된다. 이 물이 불을 끄게 되고 푸른 노트를 적시며 양분이 될 것이다. 그러니 괜찮은 것이리라. 봄이 오면 뒷산은 다시 푸를 것이요, 푸른 노트에는 진분홍의 물로 꽃 같은 인생으로 피어남을 노래할 것이 아니겠는가.
분명 한 사나흘 비 뿌리는 동안 불이 꺼지더라도 사랑은 언제나 다 타고 난 가루에서 빛나는 것이라 했다. 어쩌면 시인의 ‘내 푸른 노트’에는 참 아름다운 사랑 노래가 적힐 것 같다. 그러니 ‘꽃잎 날리는 모든 이별 / 괜찮아’라 하지 않았을까. 시인의 그 느긋한 마음이 부럽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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