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117)
목련꽃
― 김달진
봄이 깊었구나
창밖에 밤비 소리 잦아지고
나는 언제부터선가
잠 못 자는 병이 생겼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지난밤 목련꽃 세 송이 중
한 송이 떨어졌다.
이 우주 한 모퉁이에
꽃 한 송이 줄었구나.
잎보다 먼저 꽃망울을 터뜨리는 목련꽃은 봄을 알리는 전령이기도 하지만, 가지 끝에 달린 커다란 순백의 꽃들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는다. 그런데 참 아쉬운 것은 꽃이 지는 모습이 그리 아름답지 못하다. 꽃비가 내리듯이 화려하게 꽃잎이 떨어지는 벚꽃이나 복사꽃 혹은 개나리처럼 지는 것이 아니라 목련꽃은 꽃이 피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겉잎부터 하나 둘 색마저 우중충해지면서 금방 지고 만다.
김달진의 시 <목련꽃>은 바로 목련꽃이 진 상황을 보는 시인의 마음이 담겨 있다. 시 속에는 세 가지 상황이 전제되어 있다. 계절은 봄이며, 시간은 밤이며 마침 비가 내리고 있는 시간이다. 즉 ‘봄이 깊었’고 ‘창밖에 밤비 소리 잦아지’는데 시 속 화자는 ‘언제부터선가 / 잠 못 자는 병이 생겼다’고 한다. 즉 이미 ‘잠 못 자는 병’에 걸렸기에 ‘잠못 이루는’ 이유가 단순히 ‘봄비 내는 밤’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2연에서 그 이유를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을지 모른다. 화자가 ‘지난밤’에는 창 밖으로 ‘목련꽃 세 송이’가 피어 있는 것을 보았는데 ‘아침에 일어나보니’ 그 중 ‘한 송이 떨어졌다’고 한다. 꽃은 피고 나면 지게 마련이다. 모든 생명이 그렇다. 인간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그런데 목련꽃 한 송이가 진 것을 화자는 ‘이 우주 한 모퉁이에 / 꽃 한 송이 줄었’다고 인식하고 있다.
마당을 쓸며 지구 한 모퉁이를 쓸고 있다고 노래한 어느 시인처럼, 이 시에서 시인은 꽃 한송이 진 것을 단순한 일로 생각하지 않는다. 봄을 맞아 느끼는 정서 - 흔히 말하는 나이 든 사람이 느끼는 것은 하루하루 더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다. 살아온 날보다 살 날이 점점 줄어든다. 그런 때에 느끼는 나이 든 사람의 회한 - 그것이 바로 잠 못드는 이유가 아니었을까.
간밤에 세 송이 피어 있었는데 아침에 보니 그 중 한 송이가 졌다 - 아주 사소한 일이요 자연스런 시간의 흐름이지만 시인의 느낌은 남다르다. 바로 꽃 한 송이 지는 것이 마치 자신이 갈 날이 그만큼 다가오는 것처럼 느껴졌으리라. 그러니 꽃이 지는 것은 그만큼 ‘죽음’을 의미할 것이다. 그러니 목련꽃 한 송이 지는 것마저 이 우주에 있는 모든 꽃들 중에 한 송이가 줄었다고 느끼는 것이 아니겠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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