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128)
도토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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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봉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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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가을이 얼마큼 왔나 궁금해 산에 갔더니
키 작은 졸참나무 도토리들 바위틈에 수월찮이 나앉아서
꼭 포경수술 한 동무지간들 목욕탕에서처럼 쪼그리고 앉아서
운동 나온 아낙이 흘끔 보거나 말거나
큰놈 작은놈들 거시기가 밖으로 볼똑하니 나오도록 앉아서
가을볕 따글따글하니 쬐고들 있습디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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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읽다가 종종 미소를 띠게 된다. 때로는 이런 것도 시라고 썼나, 하는 허탈감에 짓는 웃음도 있지만 대부분 시인의 상상력 혹은 표현력이 내 상상을 뛰어 넘었을 때, 아니면 나도 생각했던 것을 시인이 아주 멋들어지게 표현해 놓았을 때 그런 미소를 짓는다. 때로는 무릎을 치며 ‘맞아, 이게 바로 시야’하는 말을 내뱉고는 한다.
이봉환의 시 <도토리들>도 그런 예이다. 시의 내용이래야 아주 간단하다. 가을날에 산에 갔는데 나무에서 떨어진 도토리들이 바위틈에 있었단다. 그런데 그 모양이 꼭 포경수술을 한 어린이들의 꼬추 같았다는 것이다. 어쩌면 한 문장으로 표현해도 될 이야기이다. 그런데 시가 되었다.
시 속에서 보여주는 것은 나무에서 떨어진, 바위틈에 있는 도토리들의 모습이다. 도토리들이 일부러 가을볕을 쬐려 한 것도 아니요, 의도적으로 바위틈으로 모인 것도 아니다. 그러나 시인은 도토리들에게 인격을 부여하여 마치 나무에서 떨어졌지만 모두 바위틈으로 모여 함께 가을볕을 쬐고 있는 것을 파악한다. 이를 시인은 포경수술을 한 아이들이 둘러 앉아 저마다의 것들을 꺼내 보이며 자랑을 하고 있는 것으로 바꿔버린다. 게다가 동네 아낙이 보건 말건 아이들은 저마다 지 것이 더 수술이 잘되었다고 자랑하는 모습 - 도토리가 가을볕을 받아 반짝이는 모습이 꼭 그렇게 보였다는 것이다.
연 구분도 없이 줄글로 여섯 줄이다. 시를 이야기 할 때 흔히 나오는 언어의 조탁이라든가 생략, 압축…… 이런 것을 찾아볼 수 없다. 어쩌면 시인의 삶 속에 그대로 배어 있는 어휘들이, 역시 시인의 일상 속에 즐겨 쓰는 어투 그대로 내뱉은 문장이다. 특히 맛깔스러운 것은 어휘들이다. ‘수월찮이, 거시기, 볼똑하니, 따글따글하니……’ 흔히 말하는 그 지역의 입말들이다. 소설만이 아니라 시에서도 입말이 살아 있으면 독자들에게 말깔스럽게 전달된다.
이봉환의 시 <도토리들>. 참 맛깔나지 않은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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