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139)
이팝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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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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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말지 무쇠솥 넘치도록
너실너실 잘 퍼진
저 이밥
찌들은 가난에
배 곯은 영혼들 위해
뭉실뭉실 한김을
피워 올리고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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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팝나무’는 우리나라 전역에서 정원수나 가로수로 많이 자라고 있는 낙엽 활엽 교목으로 5~6월에 흰 꽃이 핀다. 꽃이 20여 일간 잎이 안 보일 정도로 나무 전체에 피었다가 가을에는 콩 모양의 보랏빛 열매가 겨울까지 달려 있다. 현재 전국에 여러 그루의 이팝나무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을 정도로 우리 민족과 그 인연이 깊다.
‘이팝’이란 이름과 관련하여, 먼저 입하(立夏) 무렵에 꽃이 피기에 ‘입하’가 ‘이팝’으로 변음되었다는 설, 다음으로 이 꽃이 만발하면 벼농사가 잘 되어 이팝(이밥, 즉 쌀밥)이라 불리게 되었다는 설, 마지막으로 꽃이 필 때에 나무가 흰 꽃으로 덮여서 이팝(쌀밥)을 연상시키므로 그리 불렀다는 설 등이 있으나 어느 설이 맞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이 나무의 꽃을 ‘이팝나무꽃’이라 하며 지역에 따라 ‘밥태기꽃’이라 부르기도 한다.
신구자의 시 <이팝꽃>은 위 세 가지 설 중 아팝나무에 꽃이 필 때 마치 이팝을 가득 담은 모양과 흡사하다 하여 그리 불렀다는 설을 바탕에 깔고 ‘이팝꽃’을 바라보고 있다. 제목 ‘이팝꽃’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이팝나무꽃’을 그리 지칭한 것이다. 그런데 시 속에서는 그냥 이밥이 아니다. ‘서말지 무쇠솥 넘치도록 / 너실너실 잘 퍼진’ 이밥이다. ‘서말지 무쇠솥’이 무엇인가. ‘지’는 양(量)을 나타내는 말이다. 그러니 세 말이나 들어가는 무쇠로 만든 솥이다. 가히 그 밥솥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다.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이팝나무꽃을 보며 쌀 세 말로 지은 밥을 생각했을까. 그만큼 많이 먹고팠던, 그만큼 배를 곯았던 우리 민족이다. 그러니 시 속에서도 ‘찌들은 가난에 / 배 곯은 영혼들 위해’라 한다. 이팝꽃은 바로 그런 배고픈 사람들을 위해, 마음껏 먹으라고 ‘뭉실뭉실 한김을 / 피워 올리고 있는’ 이밥이란 것이다. ‘너실너실, 뭉실뭉실’이란 의태어가 잘 된 쌀밥의 모양을 더욱 맛나게 만든다. 정말 먹고픈 생각이 들 정도이다.
‘이팝나무’ 이름만이 아니라 가난했던 우리 민족의 아픔이 꽃 이름에 담겨 있어 종종 서글픈 생각이 든다. 어찌 꽃을 보고 이팝(쌀밥)이 고봉(高捧)으로 담겨 있는 밥그릇을 연상했겠는가. 이팝을 먹지 못할 때 조팝(조밥)이라도 먹고 싶어 ‘조팝나무꽃’이 생겨났지 않은가. 어디 그뿐일까. 하늘에서 내리는 눈을 ‘떡가루’라 상상했으며, 똑같은 것은 ‘젓가락 두 짝’이요, 자신이 점심을 먹지 못하니 다람쥐가 ‘도토리 점심 가지고’ 놀러 가는 것이라 노래하며 부러워한 우리 민족의 배고픔 - 우리 생활 속 여러 명칭들에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고봉으로 가득 담은 쌀밥과 비슷하다 하여 이름 지어진 ‘이팝나무꽃’ - 시인은 그것도 모자라 ‘서말지 무쇠솥 넘치도록’ 해 놓은 쌀밥이라 한다. 그렇게나마 ‘배 곯은 영혼’들을 달래려 한 것이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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