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178)
동충하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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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성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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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들은
이 땅을 떠나기 위하여 뿌리를 가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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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 식생이란
머물러 살기 위하여 발을 가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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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줌 움켜쥘 수 없는 발과
한 발자국도 뗄 수 없는 뿌리가
서로 고립무원이 되는 것을 본 적 있는가
할퀴고 찢기는 것을 본 적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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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야 하는 것과 머물러 살아야 하는 것
그 오도 가도 못하는 순간
마침내 그들은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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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만도 못한 내가
꽃 같은 당신을 업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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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충하초(冬蟲夏草)’란 자낭균류 맥각균목 동충하초과의 소형 버섯류를 가리키는데 ‘하초동충(夏草冬蟲)’이라고도 한다. 대부분 곤충에 기생하여 숙주가 되는 곤충을 죽이고 그 시체에 자실체(子實體) - 균류의 포자를 만드는 영양체를 낸다. 자실체는 여러 모양으로 자라며 그 표면 또는 표피 아래에 여러 개의 방을 이룬다. 숙주가 되는 곤충은 나비, 매미, 벌, 딱정벌레, 메뚜기, 거미 등 다양하다. 중국 진시황제와 양귀비가 즐겨 식용했다고 전해지는 건강식품인데, 보통 버섯들과는 달리 곤충의 영양분을 먹고 자라 겨울엔 죽은 곤충의 몸에 기생하지만 여름이 되면 버섯으로 피어난다 하여 그렇게 부른다고 한다.
이성목의 시 <동충하초>는 이 풀의 생태를 통해 사랑을 노래한다. 시 속 화자의 설명이 없더라도 동물들은 이동을 하기 때문에 뿌리가 없고 식물은 한 곳에 머무르기 때문에 발이 필요 없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러니 동물과 식물의 결합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종종 결합을 한다. 바로 ‘한 줌 움켜쥘 수 없는 발과 / 한 발자국도 뗄 수 없는 뿌리가 / 서로 고립무원이 되는’ 상태이다. 그렇게 결합해서는 서로를 ‘할퀴고 찢기는 것’이란다.
동물의 뿌리와 식물의 발 - 어쩌면 사족같이 있을 수 없는 이야기이지만 화자가 말하려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다. 서로를 못 잡아먹어 안달이 난 두 개체, 만날 때마다 으르렁거리며 싸우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면 결국 합쳐진다는 말이다. 그렇지 않겠는가. ‘떠나야 하는 것과 머물러 살아야 하는 것’이 합쳐졌으니 온전할 수 있겠는가. 서로가 서로 때문에 ‘오도 가도 못하’게 되지 않겠는가. 그런데 화자는 이를 ‘마침내 그들은 완성된다’고 한다.
맞다. 사랑이다. 전혀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두 남녀가 만나 사랑을 한다. 어쩌면 달라도 너무 달라 결합하지 못할 것 같지만, 그래서 티격태격 싸우기도 할 것이지만 그렇게 세월이 흐르고 나면 두 사람은 하나가 된다. 사랑이다. 여기에 꼭 내가 죽어 네가 산다면……이라 말할 필요는 없다. 어느 한 쪽이 다른 한 쪽을 위한 희생, 공생(共生)하기 위해 만났는데 알고 보니 기생(寄生)이었고 그 사실을 인정하며 죽어가는 벌레 - 그것이 사랑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옮겨 다녀야 하는 곤충과 한 곳에 머무르려는 버섯 - 결코 결합할 수 없는 것으로 보이지만 곤충은 버섯에게 영양분을 제공하고 죽는다. 그 영양분을 먹고 자란 버섯, 바로 ‘동충하초’가 되는 것이다. 이를 화자는 ‘마침내 그들은 완성된다’고 말하는 것이리라.
여기서 화자는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동충하초 - 사랑의 완성 - 이는 바로 ‘짐승만도 못한 내가 / 꽃 같은 당신을 업는 것’과 같다고 한다. 곤충과 버섯의 결합처럼 짐승과 꽃이 맺어진 사랑 - 시 속 ‘나’는 분명 당신을 만나 사랑을 완성한 것이리라. 이러니 이 시가 훌륭한 사랑 노래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짐승만도 못하다고 자신을 낮추고는 은근히 ‘당신’을 꽃 같다고 자랑까지 하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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