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230)
물봉숭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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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정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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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처럼 살고자 했던
그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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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데렐라처럼 온몸으로 사랑받는
봉선화와는 달리
축축한 그늘에서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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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뒤편에 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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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영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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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봉숭아 눈이 퉁퉁 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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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난소암 투병하던
옆자리가 비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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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봉선’은 쌍떡잎식물 무환자나무목 물봉선화과의 한해살이풀로 흔히 ‘물봉선화’, ‘야봉선’ 혹은 ‘물봉숭아’라 부른다. 우리나라 전역의 산골짜기나 물가의 습지에 무리지어 자라는데 줄기는 곧게 서고, 많은 가지가 갈라지며, 높이는 40∼80cm 정도까지 큰다. 꽃은 8∼9월에 붉은빛이 강한 자주색으로 피는데 지름이 3cm 정도이고 짙은 자주색의 꽃이 피는 것을 특별히 ‘가야물봉선’, 흰색 꽃이 피는 것을 ‘흰물봉선’이라 부른다.
구정혜의 시 <물봉숭아>는 이 꽃을 난소암으로 투병하는 여인으로 환치시킨다. 사실 ‘물봉선’의 꽃 모양이 언뜻 보면 나팔 같지만 여성의 난소와 그 생김이 비슷한데 ‘물봉선’이란 이름에 나오듯이 ‘물’ 즉 습기가 많은 곳에서 자라는 특성이 있어 시인은 이 꽃에서 여성의 난소를 떠올렸던 모양이다.
난소암으로 입원한 사람은 바로 ‘물처럼 살고자 했던 / 그 여자’이다. 물처럼 산다는 것은 어떤 삶일까. 아등바등하지 않고 물 흐르듯이 원만한 삶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병으로 입원하고 수술하고 그리고 투병에 시달린다. 결코 원만하지 않다. ‘물봉선’은 ‘신데렐라처럼 온몸으로 사랑받는 / 봉선화와는’ 다르다. 바로 ‘그 여자’의 삶이 그랬던 모양이다. 햇빛과 함께 모든 이의 사랑을 받는 게 아니라 ‘축축한 그늘에서 산다’는 ‘그 여자’는 ‘물봉선’과 같다. 그러니 ‘언제나 뒤편에 서서 / 뭇사람들이 사는 세상을 / 말없이 바라’보지 않았을까.
그런데 더욱 안타까운 것은 지금 ‘그 여자’는 병실에서 난소암으로 고생하고 있다. 게다가 ‘이제는 서서히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조차 / 멀어져 간’다. 어쩌면 가족들도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입원한 날들이 지나면서 문병객도 하나둘 줄었을 테고 결국에는 찾아오는 사람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태풍이 불었다. 그 영향으로 ‘물봉숭아 눈이 퉁퉁 부었’단다. 실제 비를 맞은 물봉선화의 꽃모양이 그랬을 수도 있지만 실은 바로 ‘그 여자’의 모습이다.
그리고 오늘 ‘새벽에 난소암 투병하던 / 옆자리가 비워졌다’는 것은 운명을 달리했다는 말이다. 죽었다는 표현을 그냥 ‘옆자리가 비워졌다’고 말하는 시인 - 죽음을 바라보는 시인의 인식이 드러난다. 삶과 죽음, 바로 자리가 있는가 없는가의 차이이다. 죽으면 병실에 누웠던 침대의 자리가 비워지고 만다. 그것으로 삶은 끝난다. 어쩌면 오후에 다른 환자가 그 침상에 누우리라.
‘물 - 물봉선 - 난소암 - 그 여자’로 연결되는 시상은 시인만의 독특한 관찰력이다. 물봉선의 모양에서 난소를 떠올리는 것도 그러려니와 어찌 ‘물봉선’을 난소암으로 죽어간 ‘그 여자’로 환치시켰을꼬, 여류 시인의 감각이지 않겠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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