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20)
영산홍
― 정규화
어떻게 알아냈을까
그리움은 색깔이 분홍이라는 것을
영산홍은 일제히
분홍색 꽃을 들고
창원역 앞에 서 있다
넋을 놓고 바라보는 사람에게는
그리움을 담은 가슴이 있다
나도 영산홍 한 송이 바라보며
내게도 그리움이 있는가를
가만히 생각했다
‘영산홍’은 4~5월에 피며 겨울에도 잎이 완전히 떨어지지는 않는다. 많은 원예 품종이 있고 꽃은 붉은색, 흰색, 분홍색 등 다양하며 일본 원산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온실 및 남부지방에 많았는데 지금은 개량이 되어 초여름까지 전국적으로 피어 있다. 도로변 화단이나 공원 등지에 심어놓은 이 ‘영산홍’을 흔히 ‘철쭉’으로 오인하는데 ‘철쭉’과는 전혀 다른 꽃이다.
시인도 창원역 앞 화단에 피어 있는 분홍색 영산홍을 본 모양이다. 한 무더기 피어 있는 분홍빛 영산홍을 보며 시인은 문득 ‘그리움은 색깔이 분홍’이 아닐까 생각을 한 것이다. 물론 시인이 그렇게 생각했다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생각의 주체가 영산홍인 것처럼 미뤄버린다. 그리곤 영산홍이 ‘어떻게 알아냈을까’하고 감탄까지 해댄다.
창원역 앞의 영산홍이 ‘일제히 / 분홍색 꽃을 들고’ 서 있다는 것은 시인에게는 그만큼 강한 그리움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나아가 그 강한 그리움은 창원역 앞을 지나다 그 꽃을 본 사람들까지 ‘그리움을 담은 가슴’이게 만든다는 생각까지 한다. 그래 놓고 시인은 슬쩍 자신에게도 그런 그리움이 있을까, 생각해 보는 것이다.
이렇게 논리적으로 따진다면야 시인이 사기를 친 것이나 진배없다. 그리움의 색깔이 분홍이라는 것을 영산홍이 알고 분홍색 꽃을 피웠다는 것이고 그 꽃을 본 사람도 그리움을 느끼게 되고 시인도 그랬다는 것 – 모두가 시인의 말장난이지 않은가. 그런데 묘하다. 정규화의 시 <영산홍>을 읽다보면 독자도 어떤 그리움을 떠올리게 된다.
맞다. ‘영산홍 – 분홍빛 – 그리움’을 연결시키며 ‘영산홍’을 바라보는 시인의 사색에 독자도 공감을 한 것이다. 어느 평자의 말처럼 ‘이 시에 보이는 ‘그리움’은 단순하고 상투적인 그리움이 아니라 극적인 그리움’이기에 시를 읽는 나도 평범한 독자가 되어 내 그리움은 어떤 것일까를 생각하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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