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26)
할미꽃
- 이현우
‘어이구, 내 새끼……’
가문 논바닥 같은 손으로
두 볼을 쓰다듬던
친할머니 품에 안겨
먼저 십리 길
외할머니 등에 업혀
나중 십리 길
깨며, 들며, 잠 보채던
등 굽은 이십 리 길
사위어 다 사위어
가슴 저미는
양지쪽 뜨락에 핀
눈물의 까칠거림.
손자를 흔히 ‘속새끼’라고 표현한다. 할머니의 입장에서 하는 말이다. 내 몸으로 낳은 자식이 다시 낳은 자식 - 손자는 그런 존재이다. 할머니의 사랑을 받고 자란 사람들은 안다. 할머니가 얼마나 자신을 사랑했는지를……
이현우의 시 <할미꽃>을 읽어보면 지극한 할머니의 사랑을 느낄 수 있다. 친할머니나 외할머니 모두 손주를 만나면 얼싸안으며 하는 말이 바로 ‘어이구, 내 새끼……’이다. 그런 말을 듣고 자란 시 속 화자이다. 농사일로 거칠어진 ‘가문 논바닥 같은 손’이지만 할머니는 손자의 ‘두 볼을 쓰다듬’어 주었을 것이다. 그렇게 친할머니 품에 안겼던 화자이다. 어디 그뿐인가. ‘외할머니 등에 업혀’ 지내기도 했다. 그렇게 ‘먼저 십리 길’과 ‘나중 십리 길’을 ‘깨며, 들며, 잠 보채’며 할머니 사랑을 받으며 자랐다. 그러는 동안 할머니는 ‘등 굽은 이십리 길’을 걸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할머니 산소 가장자리에 핀 할미꽃을 본 화자는 어린 시절 받았던 할머니의 사랑을 떠올린다. 그리고는 ‘사위어 다 사위어 / 가슴 저미는’ - 불이 사그라져서 재가 되어버린 할머니의 모습을 보며 가슴이 저미는 것이라. 그러니 산소 ‘양지쪽 뜨락에 핀’ 할미꽃을 보며 화자는 ‘눈물의 까칠거림’을 느끼는 것이리라.
할머니의 내리사랑, 시 속 화자로 분한 시인은 바로 그 사랑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할머니의 손자 사랑 - 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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