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27)
채송화
— 김종원
키가 작다고 어찌
미녀가 아니랴
칠월 펄펄 끓는 땡볕 아래
충청도 한산 모시 짜는 아가씨처럼
다소곳이 얼굴 붉히는 꽃
두 손 펼쳐 하늘을 우러러
별빛 쏟아지는 캄캄한 밤에도
파도 철썩이는 해풍을 온몸으로 맞으며
자줏빛 순정을 키웠거니
키가 작다고 어찌
순정이 붉지 않으랴
어린 시절 내가 살던 집 화단에는 철따라 여러 꽃들이 피었다. 봉숭아, 과꽃, 채송화, 덩굴장미, 칸나, 황매화, 해바라기, 구절초…… 당연히 채송화는 맨 앞줄에 있었다. 키가 작아서였겠지만, 땅바닥을 기는 듯한 모습하며 가늘지만 통통한 잎들이 참 앙증맞다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요즘에는 그 시절의 채송화를 보기가 힘들다. 원예종으로 개량된 여러 품종의 채송화들이 더 많기 때문이리라.
김종원의 시 <채송화>를 읽으면 어린 시절 화단 맨 앞줄에 피었던 ‘채송화’를 떠올리게 된다. 누구나 다 아는 채송화의 특성 - ‘키가 작다’는 말로 시작하지만, 시인은 그럼에도 채송화는 아름다운 꽃, 즉 ‘미녀’이며 그 색깔을 붉은 ‘순정’이라고 의미를 둔다. 분명 채송화는 키가 작다. 그러나 꽃의 아름다움은 키 크기로 결정하지는 않을 것이다.
비록 키가 작지만 아름다운 채송화를 시인은 두 개의 연에 걸쳐 그 이유를 설명하며 마지막 연에서 붉은 ‘순정’으로 마무리한다. 그 붉은 순정은 어디로부터 오는 것일까. 바로 ‘칠월 펄펄 끓는 땡볕’에서도 얼굴을 ‘다소곳이’ 붉히기에 가능한 것이요, ‘별빛 쏟아지는 캄캄한 밤에도 / 파도 철썩이는 해풍을 온몸으로 맞으며’ 키운 ‘자줏빛 순정’이기에 그렇다는 것이다. ‘땡볕’과 ‘다소곳이’ 그리고 ‘캄캄한 밤’, ‘해풍’과 ‘순정’의 대비는 고통 속에 피어나는 아름다움일 것이다.
가늘고 통통한 잎에 비해 유난히 꽃잎이 얇은 채송화, 붉은색, 자주색, 노랑색…… 선명한 꽃 색깔. 시인은 이를 ‘자줏빛 순정’으로 요약하여 미녀, 즉 아름다운 꽃이라 노래하는 것이리라. 맞다. 채송화 — 참 아름답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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