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120)
민들레꽃
— 조지훈
까닭 없이 마음 외로울 때는
노오란 민들레꽃 한 송이도
애처롭게 그리워지는데,
아, 얼마나한 위로이랴.
소리쳐 부를 수도 없는 이 아득한 거리(距離)에
그대 조용히 나를 찾아오느니.
사랑한다는 말 이 한마디는
내 이 세상 온전히 떠난 뒤에 남을 것.
잊어버린다, 못 잊어 차라리 병이 되어도
아, 얼마나한 위로이랴.
그대 맑은 눈을 들어 나를 보느니.
조지훈의 시 <민들레꽃>에는 영원한 사랑의 맹세가 들어 있다. 이는 바로 ‘민들레꽃’을 매개로 한 화자와 임의 마주봄을 통해 이루어진다.
살다보면 ‘까닭 없이 마음 외로울 때’가 있다. 그럴 때 ‘노오란 민들레꽃 한 송이도 / 애처롭게 그리워’질 것이다. 누군들 그렇지 않겠는가. 외로움에 지쳐, 그리움에 목말라 하고 있을 때 민들레꽃을 바라보며 그 꽃에서 위안을 찾는 화자이다. 그러니 ‘아, 얼마나한 위로이랴.’고 감탄까지 한다. 어떻게 위로가 될까. 그것은 바로 사랑하는 임으로부터 ‘소리쳐 부를 수도 없는 이 아득한 거리(距離)에’ 있다 하더라도 민들레꽃으로 현현(顯現)한 ‘그대 조용히 나를 찾아오’기 때문이다.
시 속 화자는 사랑하는 임을 멀리 떠나온 모양이다. 그렇게 몸은 비록 떠나 있어도 사랑하는 마음만은 여전하다. 그렇기에 ‘사랑한다는 말 이 한마디는 / 내 이 세상 온전히 떠난 뒤에 남을 것’이라 되뇌인다. 그러나 ‘잊어버린다, 못 잊어 차라리 병이 되어도’ 민들레꽃은 화자에게 커다란 위안이 된다. 바로 ‘그대 맑은 눈을 들어 나를 보’고 있기 때문이다.
시 속의 ‘민들레꽃’. 처음에는 화자가 외로울 때 위로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꽃이지만, 나중에는 그 꽃이 ‘맑은 눈을 들어 나를 보’게 된다. 단순히 ‘노오란 민들레꽃’이 아니라 그대의 얼굴이다. 당연히 ‘아, 얼마나한 위로이랴’는 감탄이 나오지 않을 수 없을 것이리라. 꽃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꽃이 나를 바라본다? 그런 착상이 참 기발하지 않은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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