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223)
목백일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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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종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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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어서 열흘
아름다운 꽃이 없고
살면서 끝없이
사랑 받는 사람 없다고
사람들은 그렇게 말을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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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부터 초가을까지
석 달 열흘을
피어 있는 꽃도 있고
살면서 늘 사랑스러운
사람도 없는 게 아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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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있다 돌아서면
돌아서서 다시 그리워지는
꽃 같은 사람 없는 게 아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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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들여다보니
한 꽃이 백일을 아름답게
피어 있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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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없는 꽃이 지면서 다시 피고
떨어지면 또 새 꽃봉오릴 피워 올려
목백일홍나무는 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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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은 져도 나무는 여전히
꽃으로 아름다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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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안에 소리 없이 꽃잎
시들어가는 걸 알면서
온몸 다해 다시 꽃을 피워내며
아무도 모르게 거듭나고
거듭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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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롱나무는 부처꽃과에 속하는 낙엽관목으로 중국이 원산이지만 우리나라 여러 곳에 이 나무가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을 만큼 우리 역사와 함께한 나무이다. 여름날에 붉은색, 분홍색 혹은 흰색 꽃을 피우는데, 꽃이 한 번에 피고 지는 것이 아니라 여러 날에 걸쳐 번갈아 피고 져서 백 일 즉 오랜 동안 펴 있는 것처럼 보여 ‘백일홍’이라고 부른다. ‘나무백일홍’, ‘목백일홍’ 혹은 ‘백일홍나무’라 불리는데, ‘백일홍나무’란 이름이 발음대로 ‘배기롱나무’로 변했다가 지금의 ‘배롱나무’가 되었다고 한다.
도종환의 시 <목백일홍>은 바로 이 배롱나무의 생태를 ‘거듭나기’로 읽고 있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고, ‘피어서 열흘 / 아름다운 꽃이 없’듯이 우리들은 ‘살면서 끝없이 / 사랑 받는 사람 없다고’들 말한다. 그러나 목백일홍처럼 ‘한여름부터 초가을까지 / 석 달 열흘을 / 피어 있는 꽃도 있고’ 평생을 ‘살면서 늘 사랑스러운 / 사람도’ 분명 있으리라. 즉 ‘함께 있다 돌아서면 / 돌아서서 다시 그리워지는 / 꽃 같은 사람 없는 게 아니’다.
그런데 이름이 ‘나무백일홍’, 즉 ‘목백일홍’이라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니 / 한 꽃이 백일을 아름답게 / 피어 있는 게 아니다.’ 배롱나무의 꽃은 백일 동안 피어 있는 게 아니라 ‘수없는 꽃이 지면서 다시 피고 / 떨어지면 또 새 꽃봉오릴 피워 올’린다. 그렇기에 ‘목백일홍나무는 환한 것이’리라. 즉 ‘꽃은 져도 나무는 여전히 / 꽃으로 아름다운 것이다.’ 왜냐하면 먼저 핀 꽃이 지면 다음 꽃이 새로 피어 언제나 환하게 목백일홍나무를 밝히기 때문이다.
먼저 핀 꽃이 질 때면 새로운 꽃이 피어나 오랜 동안, 백일 동안 나무를 환하게 밝히는 목백일홍의 꽃 - 시인은 이를 ‘제 안에 소리 없이 꽃잎 / 시들어가는 걸 알면서 / 온몸 다해 다시 꽃을 피워내’는 것으로 파악한다. 그렇기에 목백일홍나무를 ‘아무도 모르게 거듭나고 / 거듭나는 것’으로 인식한다. 맞다. 목백일홍은 꽃이 피어 백일 동안 시들지 않고 피어 있는 게 아니다. 먼저 핀 꽃이 지고 새로운 꽃이 피어나고 다시 시들면 또 새 꽃이 피어나고…… 꽃은 그렇게 백 일 동안 계속 피어나며 목백일홍나무를 환하게 밝힌다.
시인은 목백일홍의 생태를 정확하게 알고 있다. 꽃이 피어 백 일 동안 지지 않는 게 아니라, 꽃이 피고 지고 다시 새 꽃이 피고…… 시인은 꽃나무의 이런 생태를 ‘거듭나기’라고 한다. 그렇기에 꽃이 져도 새로 핀 꽃으로 나무는 여전히 아름다울 수 있으리라. 나무는 ‘제 안에 소리 없이 꽃잎 / 시들어가는 걸 알면서’도 ‘온몸 다해 다시 꽃을 피워’낸다. 그렇게 ‘아무도 모르게 거듭나고 / 거듭나’기에 꽃나무는 백 일 동안 화하게 아름다움을 유지할 수 있지 않겠는가.
목백일홍의 생태를 정확하게 알고 이를 ‘거듭나기’로 인식한 시인. 먼저 핀 꽃이 시들 때면 온 몸을 다해 다시 꽃을 피워내는 목백일홍의 열정, 어쩌면 시인은 목백일홍을 통해 삶의 열정은 물론 끊이지 않는 시 정신까지 배웠으리라. 거기에 목백일홍처럼 거듭나기를 통해 오랜 동안 식지 않는 사랑을 꿈꾸는지도 모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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