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144)
백일홍
) -->
― 문성혜
) -->
어젯밤
어디서 잤는지
머리에
붉은 실밥이 가득하다
) -->
수박장사 리어카조차
그늘에서 쉬고 있는
한낮
) -->
지린내가 진동하는
공터에
) -->
태양을 독점한 듯
미친 여자 하나
눈부시게
서 있다
) -->
) -->
백일홍은 쌍떡잎식물 초롱꽃목 국화과의 한해살이풀로 100일 동안 붉게 핀다 하여 백일홍(百日紅)이란 이름이 붙었으며 백일초(百日草)라고도 부른다. 꽃 색이 선명하고 풍부하며, 꽃 형태도 소형부터 다알리아 크기의 거대한 송이까지 다양하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꽃꽂이용으로 많이 쓰이나, 우리나라에서는 대부분 화단에 심어 기르는데 근래에는 다양한 개량종들이 개발되어 관상용으로 많이 찾고 있다. 특히 척박한 토양에서도 잘 자라며 고온에 강해 해길이(day-length)의 영향을 크게 받지 않는다고 한다.
문성혜의 시 <백일홍>은 백일홍의 생태 중 척박한 토양에서도 잘 자라며 고온에 강한 특성을 그려낸다. 첫 연은 백일홍의 외양 - 화려한 꽃술을 ‘머리에 / 붉은 실밥이 가득’한 것으로 그리고 있다. 둘째 연은 고온에, 셋째 연은 척박한 환경에 강한 특성이다. 얼마나 태양빛이 뜨거우면 ‘수박장사 리어카조차 / 그늘에서 쉬고 있는 / 한낮’이겠는가. 그런 뜨거운 여름 태양 아래에서도 백일홍은 꽃을 피운다. 그것도 ‘지린내가 진동하는 / 공터’이다. 지린내가 진동하는 곳은 인간에게는 척박한 땅이지만 백일홍은 그곳에서도 꽃을 피운다.
마지막 연은 시인의 눈에 비친 백일홍의 특성이다. ‘태양을 독점한’ 모습은 뜨거운 여름날에도 피어나는 모습이며, ‘미친 여자 하나’는 백일홍이 ‘어젯밤 / 어디서 잤는지 / 머리에 / 붉은 실밥이 가득’한 것을 근거로 한 말이다. 그럼에도 백일홍은 ‘눈부시게 / 서 있다’고 한다. 뜨거운 여름날, 더욱 뜨거운 한낮에, 그것도 지린내 진동하는 척박한 공터에 머리가 헝클어진 미친 여자처럼 피어나지만 실은 화려한 꽃술을 활짝 펴서 눈부시게 피어난 백일홍 - 어찌 보면 진흙탕 속에 피어나는 연꽃과 같다. 그러니 이 시는 백일홍 예찬이 된다.
좋지 않은 환경을 거론하려니 시인은 그리 아름답지만은 않은 어휘들을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그 어휘들의 이면에는 백일홍의 아름다움을 알아보는 시인의 시선이 숨어 있다. ♣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돈희의 <억새> (0) | 2018.10.25 |
---|---|
김춘수의 <달맞이꽃> (0) | 2018.10.25 |
이수익의 <구절초> (0) | 2018.10.24 |
황구하의 <너도바람꽃> (0) | 2018.10.23 |
이정록의 <대추나무> (0) | 2018.10.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