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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리의 <꽃보다 작은 꽃 - 쇠별꽃을 위하여>

복사골이선생 2018. 12. 16. 06:04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 (186)



꽃보다 작은 꽃

- 쇠별꽃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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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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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멎은 고요한 봄 하늘 아래

꽃의 이름으로 핀

가장 작은 꽃이 있다면 너였으리라

안료가 오들오들해진 대지의 화폭에

미묘하게 돋아난 뾰루지 같은 꽃

대롱 속 바람소리처럼 텅 비어

쉼 없이 어룽거리기만 하니

누가 저 꽃의

꽃봉오리 움트는 소리를 들었단 걸까

휘황한 햇빛 아프도록 등에 지고도

쪼그려 앉지 않으면

끝내 보이지 않는 꽃

산그늘 무거운 이 땅의 장삼이사들

봄 하늘에 떨군

눈물방울들이 저만 했으리

은하의 여울이 봇도랑에 흐르고

풀섶에 반짝이는 뭇별들의 섬광,

생의 잔뿌리들 이따금 들이켜는 먼 물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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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별꽃은 석죽과의 두해살이풀 또는 여러해살이풀로 꽃의 형태가 작은 별과 같다는 데서 유래한 이름인데 계아장(鷄兒腸)’, ‘번루(繁縷)’ 혹은 콩버무리라고도 한다. 다소 습기가 있는 곳에서 잘 자라는데 밑 부분은 옆으로 기면서 자라고 윗부분은 높이 2050cm까지 어느 정도 곧게 자란다. 56월에 가지 끝에 백색꽃이 달리고 잎짬에서도 한 개씩 나오며 꽃이 핀 다음 꽃대는 밑으로 굽는다. 우리나라 각지의 다소 습기가 있는 들이나 밭에 자라는데 봄철에 어린잎과 줄기를 나물이나 국거리로 하며 김치나 생채로도 식용이 가능하여 소채 대용의 가치가 높다.

김명리의 시 <꽃보다 작은 꽃>쇠별꽃을 위하여란 부제가 말해주듯이 이 꽃의 특징으로 작음을 그려낸다. 전체 18행 단연시인데 내용상 크게 둘로 나눌 수 있다. 1~12행까지는 쇠별꽃의 외양을 묘사하고 13~18행까지는 이 꽃의 의미를 우리네 살아가는 이야기로 확대하고 있다. 시 속 화자의 말을 따라가 보자.

화자는 쇠별꽃을 의인화하여 봄에 피는 꽃 중에 가장 작은 꽃을 쇠별꽃 너였으리라한다. 단순히 작기만 한 것이 아니라, 봄을 맞아 안료가 오들오들해진 대지라는 화폭에 미묘하게 돋아난 뾰루지 같은 꽃이라고 한다. 너무 작은 꽃이니 눈에 잘 뜨이지도 않는다. 눈에 보이지 않으니 쉼 없이 어룽거리기만한다. 눈여겨 집중하여 찾지 않으면 눈에 잘 뜨이지 않을 것이요 당연히 그냥 맨눈에는 어룽거리기만 한다. 게다가 누가 저 꽃의 / 꽃봉오리 움트는 소리를들은 사람이 없을 만큼 작다. 그러니 쇠별꽃을 보려면 봄날의 햇빛을 등에 지고 쪼그려 앉아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끝내 보이지 않는 꽃이다. 화자의 인식은 쇠별꽃 = 작은 꽃이다.

그 다음 이어지는 행들은 바로 쇠별꽃의 작음을 장삼이사들의 눈물방울로 환치시킨다. 그것도 산그늘 무거운 이 땅의 장삼이사들이요 그들이 봄 하늘에 떨군 / 눈물방울들이 저만 했으리라 한다. ‘산그늘 무거운 이 땅’ - 양지바른 곳이 아니라 그늘이 져 어두운 곳, 바로 그런 곳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장삼이사(張三李四)란다. 장씨(張氏)의 셋째 아들과 이씨(李氏)의 넷째 아들, 바로 이름이나 신분이 특별하지 않은 평범한 사람들이 아닌가. 특별할 것도 없고 내세울 것도 없는 흔히 말하는 이 땅의 민초(民草)’들이 삶에 허덕이며 흘리는 눈물방울이 딱 쇠별꽃 만했다니 삶에 찌들어 남몰래 흘리는 눈물이요 특별한 사람들에게는 보이지도 않는 눈물방울들이 아닌가.


그런데 여기서 화자는 쇠별꽃의 생육환경을 연결시킨다. 바로 습기가 많은 곳에서 잘 자라는 쇠별꽃의 특징이다. 바로 그 눈물방울 곁으로 은하의 여울이 봇도랑에 흐른단다. 어디 그뿐인가. ‘풀섶에 반짝이는 뭇별들의 섬광이 있고, ‘생의 잔뿌리들 이따금 들이켜는 먼 물소리가 들린단다. 봇도랑, 풀섶, 뭇별, 섬광, 잔뿌리들, 물소리…… 눈 앞에는 멋진 풍광이 보이는 듯하지만 실은 우리네 장삼이사들이 살아가는 모습이다.


결국 화자가, 아니 시인이 주목하는 것은 작디작은 쇠별꽃과 함께 그 꽃들이 피어나는 곳에서 들리는 생의 잔뿌리들 이따금 들이켜는 먼 물소리이다. 바로 우리네 평범한 이웃들이 살아내려는 의지, 바로 삶의 활기찬 모습이리라. 첫 행에서 비 멎은 고요한 봄 하늘 아래라 했다. 비가 내린 봄날 땅은 촉촉해질 것이요 생의 잔뿌리들은 그 물기를 들이켜 쇠별꽃을 피우지 않았겠는가. 그렇기에 이따금 들이켜는 먼 물소리는 우리네 장삼이사들이 살아내려는 혹은 살아내고자 하는 의지이리라.


그런데 시인은 봄비 머금은 흙 속에서 쇠별꽃 잔뿌리들이 들이키는 물소리를 듣고 있다. 논리적으로 따져 시인의 귀가 보통 밝은 귀가 아닌 모양이지만. 실은 시인에게 이런 상상력과 예리한 시각이 있기에 쇠별꽃 - ‘꽃보다 작은 꽃을 위하여 노래를 할 수 있지 않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