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이진흥의 <진달래꽃>

복사골이선생 2018. 10. 17. 09:50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 (138)







진달래꽃

 

이진흥

 

진달래꽃이 피었습니다

온 몸 구석구석

오들오들 그리움이 피었습니다

 

가슴 속 관류하는 고통의 핏줄

바위틈에 숨겨진 화려한 절망들이

봄바람에 터져서 피었습니다

 

향기로운 당신 말씀 가혹하여

함부로 찢어져서 빠알갛게

온 산에 철철철 흘렀습니다

 

 

진달래꽃이라면 이별의 한을 노래한 김소월의 시가 너무 깊게 각인되어 의외로 진달래꽃을 노래한 시가 드물다. 언젠가 여론조사에서 통일 한국의 국화로 가장 적절한 꽃으로 진달래가 선정되었을 정도로 진달래꽃은 우리 민족의 정서와 잘 어울린다. 단순히 봄 산을 수놓는 붉은 물결만이 아니라, 가난하던 시절 꽃을 따 먹었고 화전(花煎)이란 부침개로, 진달래주란 술로도 먹지 않았던가. 달콤한 맛과 함께 독특한 향기는 그만큼 우리들에게 아련한 그리움을 전해준다.

이진홍의 시 <진달래꽃>도 그리움을 노래한다. ‘진달래꽃이 피었습니다란 진술 뒤에는 그 진달래꽃온 몸 구석구석피어난 오들오들 그리움으로 파악한다. 물론 당신을 향한 그리움이다. 가고 없는 당신인 모양이다. 그러니 당신을 그리워하다가 가슴 속 관류하는 고통의 핏줄만이 아니라 바위틈에 숨겨진 화려한 절망들까지 봄바람에 터져버렸단다. 그렇게 터진 것이 바로 진달래꽃이란 진술이다.

사랑했다혹은 보고 싶다는 사랑의 말인지 아니면 해어지자는 이별의 말인지는 모르지만 시 속 화자에게는 향기로운 당신 말씀가혹했다는데, 그랬기에 함부로 찢어져서빠알갛게 / 온 산에 철철철 흘렀다는 것이다. ‘진달래꽃에 감정 이입된 화자의 마음, 바로 핏줄과 절망이 터지고 나아가 붉은 피가 철철철흐르는 모습으로 나타난 꽃은 진분홍 꽃 색깔은 물론 그 모양과도 어울려 당신을 향한 그리움이 얼마나 간절한지를 잘 보여준다.

피다, 터지다. 찢어지다, 흐르다는 동사들은 당신을 향한 그리움으로 꽃이 피어나는 모습을 생동감 있게 그려낸다. 그 생동감을 더 선명하게 만드는 말이 오들오들그리고 철철철이란 의태어 의성어이다. 시 속 어구에 참으로 교묘하게 연결되어 이미지를 선명하게 만드는 어휘들…… 바로 시인의 언어 선택 능력이다.

어느 시인이 그랬다. ‘어떤 진달래도 소월로부터 각인된 진달래의 이미지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며, 그 위에 덧씌워질 개연성 때문이다.’라고. 맞다. 김소월의 시 때문에 그렇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진달래꽃을 이별, 그리움, ()……의 이미지로 인식한다. 시인도 그런 영향을 받았을까. 그것은 잘 모른다. 그런데 나는 별종인 모양이다. 아무리 진달래꽃을 보아도 그 꽃에서 이별이라든가 한을 느끼지 못한다. 내 기억 속에는 그저 봄 산을 붉게 수놓는 아름다운 풍경만이 뚜렷하게 남아 있다. 그래서 시인이 되지 못하는지는 모르지만, 때로는 김소월 때문에 독자들이, 시인들이 진달래꽃의 이미지를 그런 방향으로만 굳히는 것이 아닌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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