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이도윤의 <연꽃>

복사골이선생 2018. 8. 21. 13:05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 (63)





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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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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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도 때로는

술 취해 뒹구는 인간 세상이

그리운 것이다

아무도 몰래

더러운 방죽으로 스며든 달이

진흙 발을 딛고 검은 하늘을 내어다본다

갓 피어난 흰 연꽃이 천지에 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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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은 진흙 속에서 자라면서도 청결하고 고귀한 식물로, 우리들에게는 불교와 연관되어 아주 친근한 꽃이다. 말이나 글에 의하지 않고 마음에서 마음으로 도()를 전한다는 뜻의 염화시중(拈華示衆)’이란 말이 석가모니가 연꽃을 따서 들고 대중들에게 보였는데 가섭(迦葉)만 그 의미를 알고 미소로 답했다는 일화에서 유래했듯이 사찰에 가면 연꽃 문양을 많이 볼 수 있다.

·보살이 앉아 있는 연화좌(蓮華座)를 비롯해 불전을 구성하는 불단과 천장, 문살, 공포, 공포벽 등은 물론이고 탑, 부도, 심지어는 기와의 암·수막새에 이르기까지 연꽃이 장식되지 않는 곳이 거의 없다. 그러니 연꽃을 불교의 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어쩌면 불교의 정신세계와 불자들의 부처를 향한 신앙심을 짙게 투영하고 있는 상징적인 꽃이라 할 수 있다.

이도윤의 시 <연꽃>은 불교와는 거리가 멀다. 시에서 연꽃은 달님이 자구로 내려와 놀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한다. 어쩌면 우주를 꿰뚫고 있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화자에 따르면 달도 때로는 / 술 취해 뒹구는 인간 세상이 / 그리운 것이다고 한다. 달이 살고 있는 우주와 술 취해 뒹구는 인간 세상은 선경과 속세를 대비시킨 것일 수도 있다. 아무리 선경에 살고 있는 달이라 해도 때로는 부대끼며 살아가는 인간 세상의 멋이 그리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달은 지구로 와 아무도 몰래 / 더러운 방죽으로 스며든. 그리고는 더러운 방죽이니 진흙 발을 딛고 검은 하늘을 내어다본다달이 인간 세상에 와 더러운 방죽에 진흙발로 딛고 밤하늘을 본다는 것이다. 바로 그 때 화자에게 들킨 모양이다. 그러니 화자는 그것이 달이라는 것과 상관없이 갓 피어난 흰 연꽃이 천지에 환하다고 하지 않는가.

연꽃을 어찌 달로 환치시켰을까. 아무리 봐도 달과는 그 모양이 좀 다른데…… 맞다. 둥근 모양, ‘갓 피어난이라 했으니 환한 보름달과 흡사할 것이다. 시인의 뛰어난 관찰력이 돋보인다. 그렇게 읽고 보니 연꽃이 달덩이가 되어 시 속에서 나와 내게 다가오는 것 같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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