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김재진의 <능소화>

복사골이선생 2018. 8. 21. 13:03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 (62)







능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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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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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소화가 핀다

저 꽃이 피기까지 나는

몇 번의 옷을 갈아입고

몇 번의 식사를 했던 것일까?

지금 피고 있는 저 꽃은

눈 앞에 있지만 다시 보면 없다

다만 피고 있는 것처럼 보일 뿐

존재하는 것처럼 보일 뿐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 숨쉬고 가끔 사랑에 빠지는 그대여,

그대가 느끼는 그것 또한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존재하지 않는다

있는 것처럼 보일 뿐 우리는 어디에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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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진 스님의 수행이야기 <스님은 사춘기> 중에 보면 삶의 행로는 허공을 날아가는 새들의 날개짓과 같다고 한다. 때로는 높이 비상하고 또 때로는 천천히 날 수 있는 것은 허공이 텅 비었기 때문인데 이처럼 삶 속의 모든 행복과 불행, 만남과 이별, 생과 사 모두 허공 속에서 일어나는 변화일 뿐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김재진의 시 <능소화>를 읽으면 명진 스님의 그 말이 떠오른다.

능소화는 중국 원산으로 금등화(金藤花)’라고도 하는데 지금은 우리나라 전역에서 볼 수 있는 흔한 꽃이다. 그러나 옛날에서는 이 꽃을 양반집 마당에만 심을 수 있었다 하여 양반꽃이라고 부르기도 한단다. 능소화과의 낙엽성 덩굴식물인데 가지에 흡착근이 있어 벽에 붙어서 올라가고 큰 것은 그 높이가 10m에 달하기도 한다.

김재진의 시 <능소화>능소화를 소재로 하고는 있지만 어느 꽃을 제목으로 해도 뜻은 통한다. 시 속 화자는 묻는다. 능소화가 피기까지 나는 / 몇 번의 옷을 갈아입고 / 몇 번의 식사를 했던 것일까?’라고. 하기는 그 숫자를 정확하게 셀 수 있을까 싶다. 그러나 그렇게 묻는 것은 얼마나 여러 번 옷을 갈아입고 식사를 몇 차례나 했는지를 알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이어서 나오는 지금 피고 있는 저 꽃은 / 눈 앞에 있지만 다시 보면 없다란 말을 하기 위해서이다.

, 눈 앞에 피어 있는 능소화는 다만 피고 있는 것처럼 보일 뿐 / 존재하는 것처럼 보일 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지금 눈에 보이는 꽃은 씨앗의 발아부터 시작하여 잎이 나고 줄기가 자라고 꽃봉오리를 맺고 꽃잎이 벌어지는 일련의 과정 중의 한 순간일 뿐이지 꽃 자체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실재하는 것처럼 보고 느끼지만 실은 일련의 과정 속 허상일 뿐이라는 말이다. 그러니 옷을 몇 번 갈아입고 밥을 얼마나 많이 먹었는가 보다는 그런 과정 속에 봐왔던 꽃이란 의미이다.


여기서 화자는 지금 숨쉬고 가끔 사랑에 빠지는 그대를 불러 전한다. ‘그대가 느끼는 그것 또한 /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숨을 쉬며 종종 사랑에 빠지기도 하지만 우리가 느끼는 사랑은 물론 존재하는 것처럼 우리 눈에 보이는 것 역시 능소화와 마찬가지로 삶의 과정 속 어느 순간일 뿐, 모두가 허상이라는 말이다. 이에 화자는 결론을 내린다. ‘있는 것처럼 보일 뿐 우리는 어디에도 없다.


능소화의 꽃말은 명예혹은 그리움이라고 한다. 시인은 혹 그리움을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렇다고 하더라도 능소화 대신에 어떤 꽃 이름을 제목으로 하더라도 그 의미는 통한다. 그것은 우리의 삶이란 허공 속에서 일어나는 변화일 뿐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스님의 말과 뜻이 통한다. 어찌 능소화란 꽃을 보며 이런 철학적 명제를 제시할 수 있을까. 시인의 예리한 통찰이 아니고는 해내지 못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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