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60)
석류
— 이상헌
유리 주머니 속에
붉은 석류 알이 가득,
한 숟갈 떠내봤으면!
이 빛깔 인간의 것은 아니다
수정 알맹이들이
얼음 알갱이들이
내 위벽을 붉게 물들이고
으스스 떨게 하고
깊은 마음으로 굴러가며,
따르르 탱탱 깨울 것 같다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느끼겠지만, 석류가 익어 벌어지면 알알이 박힌 보석마냥 그 속은 참 아름답다. 간혹 먹기가 아깝다는 느낌마저 들기도 한다.
이상헌의 시 <석류>는 바로 석류의 그러한 모습을 잘 드러내고 있다. 석류 껍질만 보면 결코 그렇지 않겠지만, 속을 보면 정말 ‘유리 주머니 속’을 들여다보는 느낌이다. 그 안에 ‘붉은 석류 알이 가득’ 들었는데 시인은 ‘한 숟갈 떠내봤으면!’하는 것이다.
그런데 석류 속 ‘붉은’ 빛은 참 독특하다. 그러니 시인은 ‘이 빛깔 인간의 것은 아니다’고 단언한다. 그만큼 붉은 빛은 인간계의 빛깔이 아니라는 것이다. 알알이 박힌 그 붉은 씨를 시인은 ‘수정 알맹이들’과 ‘얼음 알갱이들’로 본다.
정말 한 숟갈 떠먹으면 어떻게 될까. 붉은 알알이 몸 속으로 들어가면 ‘위벽을 붉게 물들이’는 것은 물론이요 ‘얼음 알갱이들’은 몸을 ‘으스스 떨게 하’지 않겠는가. 그 알갱이들이 몸 속에서 ‘깊은 마음으로 굴러가며’ 시인의 정신을 ‘따르르 탱탱 깨울 것 같’지 않겠는가. 이 대목에서 시인의 상상력은 무릎을 치게 만든다.
석류 속을 처음 보았을 때 나는 그저 보석이 박힌 듯하다는 단순한 느낌이었는데, 이상헌 시인은 그 보석 같은 알맹이들을 수정과 얼음이란 아름다움과 차가운 이미지로 치환하여 얼음을 삼킨 듯 몸은 떨리겠지만 오히려 시인의 정신을 ‘탱탱 깨울 것’으로 보고 있다. 시인의 상상력, 놀랍지 않은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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