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박노빈의 <진달래>

복사골이선생 2018. 8. 21. 02:24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 (57)







진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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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노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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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나리는

울타리와 길가에 노란 깜박이를 바르다가

모세의 기적처럼 검은 길을 가르는 벚꽃

겨울 흙을 갈아엎는

봄의 파도가 지금 산을 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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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면 꽃들이 차례대로 피어난다. 복수초, 매화, 산수유, 목련, 개나리, 벚꽃, 진달래, 철쭉…… 근래에는 지구의 온난화 탓인지 순서에 상관없이 마구잡이로 피기도 하지만, 이런 순서로 봄꽃이 핀다. 물론 지역에 따라 그리고 양지 혹은 음지에 따라 순서가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대략 순서를 지킨다. 식물 더 크게는 자연의 이치일 것이다.


박노빈의 시 <진달래>에는 봄꽃의 개화 순서에 따라 개나리 - 벚꽃 - 진달래가 차례대로 묘사된다. 그런데 묘사돤 상황이 참 재미있다. 화자가 마치 자동차를 운전하며 앞에 보이는 것을 그대로 전하는 그림 같기 때문이다.

시인은 지금 차를 운전하고 있다. 그런데 울타리와 길가에 핀 개나리는 노랗다. 그 색깔을 차의 진행 방향을 나타내는 깜박이로 간주한다. 길가에 핀 노란 개나리가 마치 깜박이를 켠 듯 차의 진행 방향을 일러주는 듯하다. 벚꽃은 어떤가. 대부분의 벚꽃은 길 가에 가로수처럼 서 있다. 여의도 윤중로가 그렇고, 전주에서 군산으로 가는 국도변도 그렇고, 진해 벚꽃잔치는 아예 거리에서 벌어진다. 그러니 길 가 양편으로 줄지어 늘어서 활짝 핀 벚꽃은 어쩌면 바닷물이 갈라지는 모세의 기적처럼 시인의 차가 진행하도록 갈라선 것처럼 그려진다.


그렇다면 진달래는 어떨까. 개나리가 피고 벚꽃이 피고 그리고 진달래가 필 차례인데, 진달래는 산에 있다. 시 속에 진달래라 명기되어 있지는 않지만 산자락에서부터, 등성이로 그리고 정상으로 오르며 진달래가 점차 피어나는 것이다. 이를 시인은 겨울 흙을 갈아엎는 / 봄의 파도산을 오르고 있는 것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운전을 하며 나아가는 진행 - 시인만이 아니라 진달래도 마찬가지로 나아가듯 산을 오르며 피어나는 것이리라.

시를 읽다 보면 시인의 재치에 감탄을 하면서도 정말 운전을 하며 깜빡이를 켜고 번잡한 길이 뚫리고 그리고 멀리 보이는 산에 분홍빛이 산으로 오르는 것처럼 느껴진다. 아니 그렇게 보인다. 봄꽃 - 개나리, 벚꽃, 진달래를 그리고 있지만 시의 제목은 진달래이다. 아마 시인은 진달래에 마음을 빼앗겼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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