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54)
홀아비바람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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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미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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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음을 입 안에 넣고
딱, 딱 소리나게 씹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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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있었던
들판에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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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뚜라미도 몇 마리
갖다 붙이고
빗방울도 몇 개 갖다
붙였다
가물가물한 저 강과 둑과
강 위를 날아가는 새도
갖다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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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로
아무도 없는
캄캄한 밤이
또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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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아비바람꽃’은 미나리아재비과 바람꽃속의 여러해살이풀로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강원도 산지에 분포하고 있다. ‘바람꽃’ 중에서 꽃대가 한 개씩 올라와 피는 모습이 홀아비 같다 하여 ‘홀아비’란 이름이 붙여졌다는데, 서구에서 부르는 이름 ‘아네모네(Anemone)’는 ‘바람’ 또는 ‘바람의 딸’이란 뜻으로 그리스 신화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신미균의 시 <홀아비바람꽃>은 바로 그 꽃을 객관적상관물로 하여 ‘사랑의 추억’을 노래하고 있다. 시적 화자는 사랑을 잃고 그 사랑을 그리워하고 있다. 사랑을 잃어 슬프지만 소리 내어 울지 못한다. 왜 그런지는 모르지만 그 ‘울음을 입 안에 넣고 / 딱, 딱 소리 나게 씹’었단다. 슬픔이 크면 그렇게 되는 모양이다. 그렇게 씹은 울음을 ‘네가 있었던 / 들판에 붙였다’고 한다. 어쩌면 추억의 장소인 들판에서 목놓아 울었다는 말이 된다.
그 들판에는 울음소리만 들리는 것이 아니다. ‘귀뚜라미도 몇 마리’, ‘빗방울도 몇 개’, ‘가물가물한 저 강과 둑’, ‘강 위를 날아가는 새’가 보이고 들린다. 울음소리에 붙인 귀뚜라미, 빗방울, 강, 둑, 새 들은 ‘너’와 함께 나누었던 추억일 것이다. 그런데 그 추억들이 참 슬프고 외롭다. 왜냐하면 그렇게 목놓아 울었지만 ‘그 뒤로 / 아무도 없는 / 캄캄한 밤이 / 또 찾아왔’기 때문이다. ‘아무도 없는 / 캄캄한 밤’이라니…… 그만큼 희망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왜 시 제목이 ‘홀아비바람꽃’일까. 시 속 화자의 모습이 바로 ‘홀아비바람꽃’이 아닐까. 너를 잃고 혼자가 된 화자, 너와의 추억을 씹으며 문득 눈에 뜨인 꽃, 마침 ‘홀아비바람꽃’이고, 화자뿐만이 아니라, 귀뚜라미, 빗방울, 강, 둑, 새……까지 홀아비가 되어버리는 느낌이다. 그러니 ‘홀아비바람꽃’을 본 적이 있는 나로서는 시를 읽으며 곧바로 시 속 화자에 동화가 되어 나까지 슬퍼진다.
‘홀아비바람꽃’을 보며 사랑을 잃은 ‘추억 씹기’를 연상한 시인의 상상력이 탁월하다. ‘홀아비’란 말에서 그런 상상은 누구나 할 수 있을 것이라 하겠지만, 그것이 ‘추억 씹기’로까지 나아가고 이어 주변 사물들까지 홀아비로 만드는 시인의 재주가 부럽다. 게다가 시가 참 깔끔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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