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김관후의 <복수초>

복사골이선생 2018. 8. 21. 02:13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 (51)







복수초

 

김관후

 

저 산허리에 발자국 하나 둘 셋 넷

꽃잎 오므릴 시간 총소리까지 아늑하다

그 소리 거두고 싶어 고개 내밀었을까

저 높은 눈밭에서 거두고 싶었는데

아픈 사연을 향기로 감싸고 싶었는데

눈 녹이며 고개 들었는데 산은 적막감이다

 

한라산 모퉁이 복수초 한 송이

피 흘린 사연을 저 봉우리에게 말할까

차마 볼 수 없어 바위틈에서 숨죽이고

새순 돋기 전에 꽃 한 송이 피우는데

마지막 산사람은 나무숲에서 떨며

그 사연 밟고 그 아우성 눈밭에 뿌린다

 

 

201843일 문재인 대통령은 70주년 4·3 희생자 추념식에 참석하여 제주도민들에게 희망을 심어주었다고 한다. 4·3 사건이란 194843일에 경찰 및 우익 청년단의 탄압 중지와 단독 정부 수립 반대 등을 내걸고 일어난 제주도의 무장 봉기와 이후 계속된 무력 충돌, 그리고 진압 과정에서 많은 주민들이 희생된 일을 일컫는 사건이다.


8·15 광복 이후 제주도는 다른 지역보다 민족주의적 경향이 강해 통일 정부를 요구하는 사람들이 많았으나, 미군정과 경찰은 이런 요구를 힘으로 억눌렀다. 게다가 친일파였던 사람들이 미군정 아래에서 다시 관리나 경찰이 되어 돌아오자 주민들의 불만이 높아졌다. 이런 분위기에서 194731, 삼일절 29주년 기념행사가 열렸는데, 행사 도중 경찰의 말발굽에 어린아이가 치이는 사건이 일어났고, 많은 사람들이 경찰에 몰려가 항의했다. 당황한 경찰은 몰려든 사람들에게 총을 쏘아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이에 분노한 제주도민뿐만이 아니라 일부 공무원과 경찰들까지 총파업에 들어갔다. 하지만 미군정과 경찰은 이것이 공산주의자들의 선동 때문이라고 판단하고 수천 명의 주민들을 잡아 가두거나 고문했다. 물론 제주도의 남로당 세력이 이를 악용, 경찰과 군인들에게 피해를 입힌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미군정과 이승만을 등에 업은 친일 경찰은 제주도의 양민들을 공산주의자, 빨갱이로 몰아 무차별적인 고문과 총질로 수많은 희생자가 발생하였다. 이때 죽임을 당한 아녀자가 상당수에 이르며 당시 제주도민의 1/5이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

김광후의 시 <복수초>는 바로 4·3 사건을 복수초를 통해 그리고 있다. ‘한라산 모퉁이 복수초 한 송이는 바로 당시 죽어간 사람들의 넋이요, ‘피 흘린 사연을 저 봉우리에게 말할까는 한 맺힌 사연들이다. ‘저 산허리에 발자국 하나 둘 셋 넷 / 꽃잎 오므릴 시간 총소리까지 아늑하다고 했다. 바로 경찰을 피해 도망하던 양민들이 붙잡혀 죽임을 당한 모습이다. 토벌대와 경찰의 추적을 피해 한라산 산기슭으로 도망을 하던 양민들, 빨갱이란 오명을 쓰고 도망을 다니면서도 그 소리 거두고 싶어 고개 내밀었, ‘저 높은 눈밭에서 거두고 싶었는데’, ‘아픈 사연을 향기로 감싸고 싶었는데 / 눈 녹이며 고개 들었는데결국에는 토벌대에 붙잡혀 총살을 당했다. 그러니 산은 적막감을 이룰 수밖에 없다.


이웃이 총살을 당하는데 차마 볼 수 없어 바위틈에서 숨죽였고, ‘새순 돋기 전에 꽃 한 송이 피우는데 / 마지막 산사람은 나무숲에서 떨며 / 그 사연 밟고 그 아우성 눈밭에 뿌린다.’ 이 대목에 오면 친일파 서북청년단과 경찰에 의해 죽임을 당한 선량한 양민 - 제주도민들의 슬픔이 가슴을 파고든다. 내 눈에는 아름답기만 한 복수초’, 노란 빛깔의 황홀한 그 꽃이 제주도 한라산 어느 기슭에서는 이렇게 4·3 사건의 희생자들의 넋이 되어 오늘도 피어나고, 시인은 그 꽃을 보며 슬픈 역사를 읽어낸다. 실제 한라산 기슭에는 복수초군락지가 있고, 2월이면 피는 복수초가 한라산 높은 곳에서는 4월에도 피어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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