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이승철의 <변산바람꽃>

복사골이선생 2018. 8. 21. 02:15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 (52)







변산바람꽃

 

이승철

 

급하기도 하셔라

누가 그리 재촉했나요

 

반겨줄 임도 없고

차가운 눈, , 바람 저리 거세거늘

행여

그 고운 자태 상하시면 어찌시려고요

 

살가운 봄바람은, 아직

저만큼 비켜서서 눈치만 보고 있는데

어쩌자고 이리 불쑥 오셨는지요

 

언 땅 녹여 오시느라

손 시리지 않으셨나요

 

잔설 밟고 오시느라

발 시리지 않으셨나요

 

남들은 아직

봄 꿈꾸고 있는 시절

이렇게 서둘러 오셨으니

누가 이름이나 기억하고 불러줄까요.

 

첫 계절을 열어 고운 모습으로 오신

변산 바람꽃

 

 

매년 2월 말에서 3월 초 즈음이면 전국의 야생화 메니아 혹은 사진사들이 변산반도로, 여수 향일암으로, 그리고 서해의 풍도로 몰려든다. 소위 봄의 전령사라 부르는 변산바람꽃을 보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아쉬운 것은 변산바람꽃이 피기 시작했다는 소식을 들으면 불과 2~3일 사이에 만개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며칠 후면 이미 지고 없다는 것이다. 꽃말을 비밀스러운 사랑혹은 덧없는 사랑이라 하는데, 워낙 추울 때 피고, 금세 져버리기 때문에 특별히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보기가 쉽지 않은 꽃이라 그런 꽃말이 붙은 것이 아닐까.


여러 바람꽃중에 1993년 변산반도에서 처음 발견되어 꽃이름에 변산이 붙어 있는 이 꽃은 주로 남서 해안 인근에 분포하며 변산반도, 향일암, 풍도 그리고 멀게는 한라산, 마이산, 설악산에서도 관찰되었단다. 야트막한 산지의 습기 많고 햇볕이 잘 드는 지역에 자생하는 우리 토종으로 작고 여리지만 해맑고 화사한 모습이 변산아씨라는 별칭처럼 예쁜 산골처녀를 연상시킨다.


이러한 변산바람꽃의 특성을 잘 그려낸 시가 바로 이승철의 <변산바람꽃>이다. 시 전체를 요약하자면 변산바람꽃 예찬이라 할 수 있다. ‘급하기도 하셔라’, ‘차가운 눈, , 바람 저리 거세거늘’, ‘살가운 봄바람은, 아직 / 저만큼 비켜서서 눈치만 보고 있는데’, ‘언 땅 녹여 오시느라’, ‘잔설 밟고 오시느라’, ‘남들은 아직 / 봄 꿈꾸고 있는 시절’, ‘첫 계절을 열어등은 모두가 봄의 전령사라 불리는 변산바람꽃의 이른 개화시기를 나타낸 말들이다. 그런데 그 어휘들이 참 시적으로 아름답다.


화자는 이른 개화시기 때문에 누가 이름이나 기억하고 불러줄까요라 염려하면서 혹여 추위 속에 오다가 몸이 상했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까지 한다. ‘그 고운 자태 상하시면 어찌시려고요’, ‘손 시리지 않으셨나요’, ‘발 시리지 않으셨나요등이 그것이다. 특히 그런 걱정이 나타난 언 땅 녹여 오시느라 / 손 시리지 않으셨나요 // 잔설 밟고 오시느라 / 발 시리지 않으셨나요란 구절이 절창이지만, 그 절창을 마지막 두 행 - ‘첫 계절을 열어 고운 모습으로 오신 / 변산 바람꽃.’으로 부드럽게 마무리하는 시적 기교도 참 멋지다.


변산바람꽃을 한 번이라도 본 적이 있는 사람의 경우 이승철의 시 <변산바람꽃>을 읽으면 그냥 눈 앞에 꽃이 보인다. 그런데 이른 개화시기와 꽃의 자태만으로 이렇게 아름다운 시가 되다니…… 시인의 어휘 구사력과 표현이 변산바람꽃만큼 참 멋지지 않은가.


※ 사진 출처 → https://blog.naver.com/jwk2202/206358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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