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민영의 <분꽃>

복사골이선생 2018. 8. 21. 02:11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 (50)







분꽃

) --> 

민 영

) --> 

해질 무렵

장독대 옆 화단에

분꽃이 피면

이남박 들고 우물로 가던

그 여인이 보입니다.

) --> 

육십년 전에

싸움터로 끌려가서 돌아오지 않은

정든 님을 기다리다가

파삭하게 늙어버린 우리 형수님

세월이 하 무정하여

눈물납니다.

) --> 

) --> 

분꽃의 이름은 한자어 분화(粉花)’에 어원을 두고 있는데, 소꿉놀이에 많이 썼던 까만 열매 속에 밀가루 같은 흰색 가루가 있고 이 가루()를 여성용 화장품으로 사용한 것에서 분꽃이란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어린 시절, 화단에는 채송화, 백일홍, 나팔꽃과 함께 분꽃이 대종을 이루었지만 요즘 정원에는 이러한 꽃들을 찾기가 쉽지가 않다. 있다고 해도 원예종으로 품종개량을 하여 그 모양과 색깔이 다양하다.


그 중에 분꽃은 저녁 무렵에야 펴서 온 밤을 새우고 해가 뜨면 입을 다문다. 그렇기에 분꽃이 입을 활짝 벌리는 것을 보며 우리 아낙들은 저녁을 준비해야 할 시간임을 알아챘다고 한다. 민영의 시 <분꽃>에는 바로 분꽃의 이러한 특성이 드러난다. 그러나 시 제목은 분꽃이지만 해질 무렵 / 장독대 옆 화단에 / 분꽃이 피면 / 이남박 들고 우물로 가던 / 그 여인바로 형수가 시적 대상이다.


한여름, 그것도 오후 늦어서나 피는 분꽃. 그래서 옛날 시계가 없던 시절에는 아낙네들이 이 분꽃이 필 때 저녁밥을 지었다고 한다. 시 속에 묘사된 대로 장독대 옆 분꽃이 필 때면, 밥 짓기 위해 쌀을 이는 바가지인 이남박을 들고 쌀 일러 우물로 가던 여인 - 바로 형수이다. 새색시 시절, 형수는 분꽃이 피는 것을 보고 저녁밥을 지을 생각을 했다.


그리고 맞은 625 - 전쟁터로 끌려간 남편은 소식이 없지만 매일 저녁이 되고 분꽃이 피면 돌아올 기약이 없는 남편을 위해 저녁을 짓는 형수. 그런 형수를 바라보는 화자의 마음은 어땠을까. ‘육십년 전에 / 싸움터로 끌려가서 돌아오지 않은 / 정든 님을 기다리다가 / 파삭하게 늙어버린 우리 형수님을 보며 화자는 세월이 하 무정하여 / 눈물을 흘린다. 기다리다, 기다리다 파삭하게 늙어버린 그 형수 생각을 하면, 왜 그리 세월이 무정한지, 절로 눈물이 난다는 화자 - 바로 시인 민영이다.


오지 않는 사람을 기다리는 사람에게는, 그래서 그저 지나가는 그 세월이 얼마나 무정하겠는가. 올 여름에도 해질녘이면 여지없이 분꽃이 필 텐데…… 어느 자리에서 시인이 말했다. 그 형수님을 지금은 볼 수가 없어 더 생각이 난다고. 제목은 분꽃이지만, 저녁에 피는 꽃의 특성을 통해 형수를 떠올리고, 남편을 기다리다 늙어버린 모습에 세월의 무정함과 함께 눈물짓는 시인. 이제 분꽃을 보면 민영 시인의 형수를 떠올릴 것 같다.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승철의 <변산바람꽃>  (0) 2018.08.21
김관후의 <복수초>  (0) 2018.08.21
김사인의 <개나리>  (0) 2018.08.21
이문재의 <산수유>  (0) 2018.08.21
원영래의 <할미꽃>  (0) 2018.08.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