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이문재의 <산수유>

복사골이선생 2018. 8. 21. 02:08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 (48)





산수유

) --> 

이문재

) --> 

어머니, 저기, 늙어, 오신다

바람결 끝 풀어져, 끊어버린 방패연엔 어느새 이끼

情人 떠난 모진 길, 저기 탯줄처럼 풀어져

길을 내 속으로, 당기고 당겨, 묻는데

빛 없는 빛, 산수유꽃

저기, 어머니, 봄 안쪽에다 불을 켜신다

) --> 

) --> 

산수유와 시라고 하면 많은 독자들이 국어교과서에 수록되었던 김종길의 시 <성탄제> 산수유 붉은 알알이를 떠올린다. (참고 http://lby56.blog.me/220994577833 ) 성탄절 무렵 이마에 떨어진 차가운 눈 때문에 어린 시절 고열에 시달리는 아들을 위해 눈 속에 산수유 열매를 따오신 아버지 옷자락의 차가움을 떠올리게 되었다는 내용이다. 산수유는 층층나무과에 속하는 낙엽성 소교목인데 꽃은 노란색으로 3, 4월에 잎보다 먼저 피고 8 월경에 열매를 맺어 붉게 익으며 한방에서는 이 열매를 해열강장제를 비롯한 여러 약재로 사용한다.


이문재의 시 <산수유><성탄제>가 아버지의 사랑을 노래한 것과 달리 어머니의 사랑을 노래한다. 특히 이 시에서는 쉼표의 쓰임에 유의해야 한다. 쉼표 없이 읽을 때와 쉼표의 의미를 이해하고 읽을 때의 느낌은 전혀 다르다. ‘어머니 저기 늙어 오신다는 단순한 서술이지만, ‘어머니, 저기, 늙어, 오신다어머니’(누가)가 저기(어디에) 늙어(어떤 모습으로) 오신다(어떻다)로 각각의 의미가 강조된다. 이는 시 전체에 쓰인 쉼표도 마찬가지이다. 첫 행의 산수유는 꽃이 피기 전 산수유나무의 겨울 이미지이다. 어찌 보면 생명력을 상실한 나무처럼 보일 것이다.


2, 3행에 이르면 그 산수유나무가 정인(情人)이 되어 시 속 화자와의 관계를 나타낸다. 사랑하는 어머니와의 이별 혹은 사별 - 탯줄로 연상되는 길을 통해 정인(情人)’이 어머니로 겹치진다. ‘바람결 끝 풀어져’, ‘끊어버린 방패연’, ‘情人 떠난 모진 길’, ‘탯줄처럼 풀어져가 바로 산수유나무로 표현된 어머니와 화자의 관계를 드러내는 단어들이다. 그런 산수유나무는 내 속으로길을 내고, ‘당기고 당겨묻는다. 바로 꽃이 피는 모습이다. 그렇게 핀 꽃이 바로 빛 없는 빛이요 산수유꽃이다.

마지막 행에서 어머니는 이제 산수유꽃이 된 모습이다. 어디에? ‘저기, 누가? ‘어머니, 무슨 일을 한다고? ‘봄 안쪽에다 불을 켜신다는 것이다. 어머니가 봄 안쪽에켜신 불이 바로 산수유꽃이란 뜻이다. 첫 행에서는 겨울 이미지였던 산수유나무가 개화할 때에는 봄의 이미지로 바뀌고 그 꽃은 어머니가 만들어낸 생명력의 소생 혹은 위로라 할 것이다.

, 시인은 겨울이 이겨내고 봄을 알리며 피어나는 산수유를 어머니가 봄 안쪽에다 불을 켜는 행위로 표현하여 산수유꽃에 따뜻한 이미지를 부여한다.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생각에 가슴 아파하는 화자에게 다시 따뜻하게 다가온 어머니가 밝힌 불빛은 화자에게는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 소중한 위로가 되지 않을까. 화자는 당연히 산수유꽃을 보면서 어머니를 느끼고 새로운 희망을 얻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내게는 쉼표를 통한 시 표현 기교도 그렇거니와 시적 대상을 다루는 이문재 시인의 능수능란함이 부럽기만 하다.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민영의 <분꽃>  (0) 2018.08.21
김사인의 <개나리>  (0) 2018.08.21
원영래의 <할미꽃>  (0) 2018.08.21
김윤현의 <봄맞이꽃>  (0) 2018.08.21
노영임의 <복수초>  (0) 2018.08.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