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원영래의 <할미꽃>

복사골이선생 2018. 8. 21. 02:06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 (47)







할미꽃

 

원영래

 

외로워마라

살아간다는 것은

홀로서기를 배워 가는 것이다

잠시 삶에서 어깨 기댈

사람이 있어 행복하였지

 

그 어깨 거두어 갔다고

서러워 마라

만남과 이별은

본래 한 몸이라

 

엊그제 보름달이

눈썹으로 걸려 있다

더러는 쓰라린 소금 몇 방울

인생의 참맛을 일러주더라

 

외로움이

강물처럼 사무칠 때에는

산기슭 외딴 무덤가

허리 굽어 홀로 피어 있는

할미꽃을 보라

 

이른 봄 꽃샘 추위 서럽더라도

담담히

인고(忍苦)의 강을 건너는

허리 굽어도 아름다운

할미꽃을 보라

 

 

할미꽃은 우리나라 전역 산과 들의 양지쪽에서 자라는 여러 해 살이 풀이다. 4월경에 꽃줄기 끝에서 붉은 빛을 띤 자주색의 종 모양의 꽃이 고개를 숙인 채 피어난다. 흰 털로 덮인 열매의 덩어리가 할머니의 하얀 머리카락같이 보이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하는데, 전설에 의하면 딸의 구박을 견디지 못한 할머니가 손녀의 집을 눈앞에 두고 쓰러져 죽어 그 넋이 산골짜기에 피어 할미꽃이란 이름이 붙었다고도 한다. 그래서인지 이 꽃을 무덤가에서 보았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실은 무덤가라서가 아니라 산과 들의 양지였을 뿐이다.


전설 혹은 무덤가라는 편견 때문인지 할미꽃은 슬픈 이미지를 떠올린다. 그러나 원영래의 시 <할미꽃>에서는 전혀 다른 이미지로 할미꽃이 그려진다. ‘이른 봄 꽃샘추위 서럽더라도 / 담담히 / 인고(忍苦)의 강을 건너는, ‘허리 굽어도 아름다운, 바로 강인함과 아름다움을 지닌 꽃이 할미꽃이라는 것이다.


시 속 화자의 지인 중에, 그 원인이야 어찌 되었건, 이별의 아픔에 외로워하고 괴로워하는 사람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 아픔을 위로하며 시인은 나직이 속삭인다. ‘살아간다는 것은 / 홀로서기를 배워 가는 것이외로워마라. 그리고는 잠시 삶에서 어깨 기댈 / 사람이 있어 행복하였지만남과 이별은 / 본래 한 몸이그 어깨 거두어 갔다고하여 서러워 마라고 한다. 그런 이별을 통해 우리는 삶을 배우는 것이리라. 그러니 더러는 쓰라린 소금 몇 방울인생의 참맛을 일러주는 것이 아니겠는가.


여기서 화자는 외로움이 / 강물처럼 사무칠 때에는’ ‘할미꽃을 보라고 한다. 반복하자면, ‘산기슭 외딴 무덤가 / 허리 굽어 홀로 피어 있는할미꽃이다. ‘이른 봄 꽃샘추위 서럽더라도 / 담담히 / 인고(忍苦)의 강을 건너는꽃이요 허리 굽어도 아름다운꽃이다. 그러니 할미꽃을 보며 할미꽃의 삶의 여정을 생각하고 이제는 더 이상 외로워 말고 서러워 말라는 것이다. 고개 숙인 꽃이 아니라 허리 굽어 홀로 핀꽃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럼에도 아름다운 꽃이다.


내 눈에는 고개 숙인 모습이 다소곳했고, 붉은 속살은 물론 솜털로 덮인 줄기까지 그냥 부드럽고 아름다웠는데, 원 시인은 그 꽃에서 강인함을 보고 있다. 나와는 다른, 시인의 예리한 눈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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