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서안나의 <모과>

복사골이선생 2018. 8. 21. 02:26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 (58)





모과

 

서안나

 

먹지는 못하고 바라만 보다가

바라만 보며 향기만 맡다

충치처럼 까맣게 썩어버리는

그런 첫사랑이

내게도 있었지

 

 

모과 - 가을이면 시장에서 한두 개 사다가 방 안에 둔다거나 차 안에 두고 그 향기를 맡는다. 혹은 설탕에 절여 향긋한 차를 우려내어 마시기도 한다. 이렇게 모과는 그 향기를 마시는 과일이다. 그런데 과일전 망신은 모과가 시킨다는 말이 있다. 모과가 과일인 것은 사실이지만 다른 과일처럼 날로 먹지 못하기 때문이다. 즉 겉보기에는 분명 과일이고 향기 또한 참 좋지만 먹지 못하니 실제적인 가치에서는 과일들의 망신이라고 하는 말이다.


서안나의 시 <모과>에서는 모과첫사랑으로 묘사해낸다. 첫사랑 - 말만 들어도 가슴 설레는 말이다. 처음 사랑에 눈을 떴을 때 그 가슴 떨림은 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첫사랑은 두 사람이 맺어지지 못한 사랑으로 남는다. 그렇기에 더욱 아름답게 느껴지고 때로는 안타깝기까지 하다.


모과첫사랑이 어떻게 연결되었을까. 시인이 과일전에서 모과를 봤던 모양이다. 은은한 향기를 맡다가 문득 첫사랑을 기억하고 맺어지지 못한, 사랑했던 사람을 떠올리고 그리고는 마치 모과 같다는 생각을 한다. ? 모과는 먹지는 못하고 바라만 보거나 바라만 보며 향기만 맡는 과일이기 때문이다.

첫사랑도 마찬가지이다. 손잡을 수도 없고 품에 안을 수 없는, 그저 가슴속으로만 애태우던 사랑이기에 먹지는 못하고 향기만 맡아야 하는 모과가 바로 첫사랑과 같은 것이리라. 그러니 시인은 자신의 첫사랑을 떠올리며 먹지는 못하고 향기만 맡던 그런 첫사랑이 / 내게도 있었지라 말하는 것이다.


그렇게 애태우며 그리다가 끝내 이루어지지는 못하고 가슴앓이로 남은 첫사랑이기에 충치처럼 까맣게 썩어버리는것이리라. 모과가 바로 그런 과일이다. 껍질을 깎아 조각을 내어 포크로 찍어 먹지는 못하는 과일. 그저 끓는 물에 우려내어 향기만을 마셔야 하는 것이 모과이다. 첫사랑이 바로 그러하다.

모과 - 첫사랑, 참 그렇게 연결하고 보니 정말 그렇다. 시인의 예리한 분석력이 놀라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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