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이복순의 <오죽헌 배롱나무>

복사골이선생 2018. 8. 21. 02:28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 (59)







오죽헌 배롱나무

 

이복순

 

오죽헌 뜰 앞

육백 년을 머문 배롱나무

어미는 몸 낮추어 흙으로 돌아갔다는데

생명 줄 하나 싹을 틔워

어미의 세월을 살고 있다

 

어머니의 어머니를 찾아서 떠나면

수미산을 몇 바퀴 쯤 돌아야

본래의 어머니를 만날 수 있을까

 

오죽헌 밤하늘에 뜬 별들만큼이나 많았을

내 어머니의 시간들을 살고 있는 나

허상 하나 만들어 놓고 돌고도는구나

 

배롱나무 밑동에 뻗은 실가지

너인 듯 나인 듯

어미에 어미로

또 육백 년을 살겠구나.

 

 

배롱나무는 중국 남부가 원산으로, 고려 말 선비들의 여러 문집에 꽃 이름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적어도 고려 말 이전에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중국에서는 자미화(紫微花)’라고 했다는데, 보라색 자()가 아니라 자미성에 많이 피었다고 붙은 이름이라 한다. 햇볕이 뜨거운 여름날에 붉은 꽃을 피우는데 종종 흰 꽃도 만날 수 있다. 꽃이 오래 핀다고 하여 나무백일홍혹은 백일홍나무라 하였는데, 세월이 지나면서 백일홍나무배기롱나무로 변했다가 지금의 배롱나무가 되었다고 한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강릉 오죽헌의 배롱나무가 수령이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죽헌 배롱나무 앞 안내판은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이 나무는 1987년 강릉시의 꽃나무로 지정된 시화(市花)로서 한자어로는 자미화(紫微花)라 하며 꽃이 피는 기간이 백일이나 된다고 하여 백일홍이라고도 한다. <양화소록(養花小綠)>이라는 책에 기록된 것으로 보아 오래 전부터 정원수로 심어왔음을 알 수 있다. 탐스러운 분홍색 꽃이 7월에서 9월에 걸쳐 핀다. 이 배롱나무는 고사(枯死)한 원줄기에서 돋아난 싹이 자란 것으로 나이를 합치면 600년이 넘는다. 율곡 선생과 신사임당께서도 어루만졌을 이 배롱나무는 오늘날 오죽헌을 지키는 수호목(守護木)으로서의 역할을 해오고 있다.

 

이복순의 시 <오죽헌 배롱나무>는 바로 이 나무가 600년이나 되었으며 고사(枯死)한 원줄기에서 새로 돋아난 싹이 자랐다는 사실을 어머니로 표상되는 조상과 시인 자신을 잇는 매개로 표현해 내고 있다. 시인은 첫 연에서 오죽헌 뜰 앞 / 육백 년을 머문 배롱나무어미는 몸 낮추어 흙으로 돌아갔다고 소개한다. 원목이 고사했다는 사실을 말하는 것이다. 아울러 원줄기에서 돋아난 싹이 자란 것을 생명 줄 하나 싹을 틔워 / 어미의 세월을 살고 있다고 한다. 비록 어미는 고사했지만 거기서 싹을 틔운 생명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원목이 죽고 거기서 하나의 싹이 자라 오늘날까지 이어져 온다는 사실을 시인은 어머니의 어머니를 찾아서 떠나는 행위로 표현한다. ‘수미산을 몇 바퀴 쯤 돌아야 / 본래의 어머니를 만날 수 있을까라 묻는데 수미산이 어떤 산인가. 바로 불교의 우주관에서 나온, 세계의 중심에 있다고 하는 상상의 산이 아닌가. 그렇다면 영겁의 세월이 지나도 만날 수 없음을 설의법으로 노래한 것일 뿐이다.

그러니 이복순의 시 속 배롱나무에서는 아름다운 꽃이나 달콤한 향기는 없다. 그보다는 600년이라는 세월을 거슬러 오죽헌 밤하늘에 뜬 별들만큼이나 많았을 / 내 어머니의 시간들을 살고 있는 나자신을 돌아보는 화자의 모습이 보인다. 고사한 원목에서 틔운 싹 하나 - 결국 허상 하나 만들어 놓고 돌고도는것이 화자의 삶인지도 모른다.


600년 묵은 나무의 밑동과 뿌리 - 가히 짐작할 수 있다. 그러니 배롱나무 밑동에 뻗은 실가지는 화자에게 너인 듯 나인 듯느껴질 것이요, 이를 통해 어미에 어미로 / 또 육백 년을 살것임을 확인하게 된다. 어머니에서 딸로, 그 딸이 다시 어머니가 되어 또 딸에게로, 그 딸이 다시 어머니가 되어 또다른 딸에게로…… 그렇게 이어온 시 속 화자의 삶은 600년 세월을 넘어 굳게 살아남아 꽃을 피우는 배롱나무로 환치되어 있는 것이다.

오죽헌에 들렀을 때 나도 분명 배롱나무를 봤다. 땅 위에 보이는 밑동과 뿌리도 봤고, 고목임을 짐작케 하는 줄기와 아름다운 붉은 꽃도 봤다. 나는 그저 고목의 줄기에서 느끼는 고결함과 꽃의 아름다움만 보았는데, 시인은 세월을 거슬러 핏줄의 연속성까지 들여다보고 있다. 시인의 통찰력과 혜안이 놀랍지 않은가. 그렇기에 시를 다 읽고 나면 시나브로 내 어머니 얼굴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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