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박수진의 <질갱이>

복사골이선생 2018. 8. 21. 02:31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 (61)





질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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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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깎일수록 뚜렷해지는 바위처럼

채일수록 단단해지는 돌멩이처럼

메마른 길 한복판에 뿌리 내리고

한 생을 마련한 질기고 질긴 영혼

오죽하면 그 별명도 길장구 차전초이랴

자동차는 아니어도

수레나 군마는 아니어도

하다못해 발에라도 밟혀야 생기가 솟는

저 지독한 마조히즘이여,

눈물은 오래전 마르고

배설마저 잊은 지 오래여서

길장구 차전(車前),

살아낸 흔적마저 저리 검고 굳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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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가나 빈터 혹은 제방, 논두렁, 밭두렁 등 우리나라 전국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질경이는 그 이름이 잎이 질기다는 뜻에서 유래하는 것이 아니다. 길에서 산다 하여 붙여진 길경이란 오래된 이름도 있지만 실은 마차 바퀴에 깔려서도 살아나는 풀이란 한자명 차전초(車前草)’에서 유래한 것으로 그만큼 잎이 질기고 생명력이 강하다는 뜻이다. 그도 그럴 것이 질경이는 잎이 넓지만, 밟아도 쉽게 상처를 입지 않는다. 잎을 잡아당겨 보면, 잎줄을 이루고 있는 질긴 유관속 다발을 관찰할 수 있다는데 이것이 바로 질경이 잎을 유연하게 만든다고 한다.


그렇기에 질경이는 마차 바퀴 혹은 인간의 발에 밟히게 되는 길 위 또는 길 가에서도 잘 살아낸다. 사실 질경이라고 왜 쾌적한 곳에서 살고 싶지 않겠는가. 그러나 모든 생명체들이 살고 싶어 하는 좋은 환경에서는 경쟁이 심하기 때문에 그 경쟁을 피해서 밟히는 길에 밀려 나와 사는 셈이다. 식물학자들의 말에 따르면 사실 질경이는 처음부터 밟히며 살고 싶은 생명체가 아니라 하는 수 없이 그런 환경에 적응하며 사는 것이란다. 즉 생태적으로는 아무나 살 수 없는 밟히는 길을 선택해서 그곳에 적응하며 살고 있다는 것이다.

박수진의 시 <질갱이>질경이의 이런 생태적 특성을 잘 드러내고 있다. 시의 제목 질갱이는 질경이의 우물라우트(모음 역행동화) 현상에 따른 속어이다. ‘호랑이호랭이로 변하는 현상과 같은 것으로 흔히 방언에 많이 나온다. 표준어 질경이가 아니라 속어인 질갱이를 통해서도 그만큼 생명력을 드러낸다.

깎일수록 뚜렷해지는 바위’, ‘채일수록 단단해지는 돌멩이와 같이 마차의 바퀴와 인간의 발에 밟히면서도 메마른 길 한복판에 뿌리 내리고 / 한 생을 마련한 질기고 질긴 영혼이 바로 질경이이다. ‘오죽하면 그 별명도 길장구 차전초이겠는가. 이런 생명력을 시인은 저 지독한 마조히즘이라 감탄한다. 마조히즘이 무엇인가. 타인으로부터 육체적 또는 정신적으로 학대를 받고 고통을 받음으로써 성적 만족을 느끼는 병적인 심리상태가 아니던가. 그렇기에 자동차는 아니어도 / 수레나 군마는 아니어도 / 하다못해 발에라도 밟혀야 생기가 솟는것이 아니겠는가.

질경이 잎이 시들거나 줄기가 마르면 검은색을 띤다. 그것마저 시인에게는 감탄이다. ‘눈물은 오래전 마르고 / 배설마저 잊은 지 오래이기에 살아낸 흔적마저 저리 검고 굳센가라 감탄한다. 꼭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질경이의 삶을 통해 그가 살아낸 흔적까지 검고 굳센가라 감탄하는 시인은 질경이를 새로운 삶의 지표로 삼고 있는 듯 보인다.


바람보다 먼저 눕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고 김수영이 설파한 보다 더 질긴 생명력 - 마차 바퀴나 인간의 발에 밟힐수록 다시 일어나 생명을 이어가는 끈질김, 그것이 바로 질경이의 삶이 아니겠는가. 그렇기에 그 흔적은 검고 굳셀 것이다. 박 시인의 관찰력이 질경이 생태를 시로 승화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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