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조용미의 <소나무>

복사골이선생 2018. 8. 21. 13:11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 (66)







소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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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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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가 우레를 먹었다

우레를 먹은 나무는 암자의 산신각 앞 바위 위에 외로 서 있다

암자는 구름 위에 있다

우레를 먹은 그 나무는 소나무다

번개가 소나무를 휘감으며 내려쳤으나

나무는 부러지는 대신

번개를 삼켜버렸다

칼자국이 지나간 검객의 얼굴처럼

비스듬히

소나무의 몸에 긴 흉터가 새겨졌다

소나무는 흉터를 꽉 물고 있다

흉터는 도망가지도 없어지지도 못한다

흉터가 더 푸르다

우레를 꿀꺽 삼켜 소화시켜버린 목울대가

툭 불거져나와 구불구불한

저 소나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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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아가면서 이런 저런 문제와 부딪힐 때가 있다. 그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는 정답이 없다. 누구는 견디지 못하여 포기할 것이고 누구는 문제를 피해 돌아갈 수도 있다. 아니면 당당히 맞서 싸워 해결할 수도 있을 것이요 혹은 상처를 크게 입고 쓰러지기도 할 것이다. 이렇게 문제를 해결하려 끙끙 앓다가 마음의 병까지 얻는다. 스트레스가 바로 그것이리라.

조용미의 시 <소나무>를 읽다 보면 살아가며 맞닥뜨리는 문제를 어찌 해결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된다. 시의 내용이래야 서술의 순서 때문에 왔다 갔다 하지만 정리를 하면 이렇다. 산 속 암자 앞 바위에 소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번개를 맞은 소나무는 부러지는 대신 우레를 온 몸으로 받아 삼켜버렸다. 그래서 소나무의 몸에 흉터가 생겼다. 우레를 삼키느라 목울대까지 툭 불거져 나왔고 몸통은 구불구불 삐뚤어졌다. 그러나 그 흉터는 도망가지도 없어지지도 못한다.

시 속 소나무는 흔히 말하는 낙락장송이리라. 오래 된 나무이니 굵고 구부러지기도 했을 것이다. , 바람, 추위와 더위 그리고 눈을 이겨내느라 상처도 있을 것이다. 시인은 바로 소나무 구부러진 줄기와 그 줄기에 난 상처를 우레를 먹은 것으로 간주한다. 번개가 쳤는데 소나무는 부러지지 않았다. 결코 쓰러지지 않았다. 대신 내리친 번개 - 우레를 온 몸으로 받아 삼켜버렸다. 그러느라 몸이 구부러지고 상처가 났다는 것이다.

앞에서 말한 문제 해결방법의 하나이다. 그냥 삼켜버리는 것. 구부러질지언정, 칼자국 같은 상처를 입을지언정, 목울대가 툭 튀어나올지라도 우레를 그냥 삼켜버리는 것. 살아가며 마주칠 문제가 어떤 것인지 모르겠지만, 소나무에게 번개만큼 큰 문제일까. 그러나 우레를 삼킨 소나무처럼 아무리 큰 문제라도 삼켜버리면 될 것이다. 그러면 우레로 환치되어 있는 그 문제는 도망가지도 없어지지도 못하고 문제 그 자체로 남게 된다. 그러니 더 이상 소나무를 괴롭히지는 못할 것이다.


여기서 눈길을 끄는 구절이 있다. 마지막 세 행, ‘우레를 꿀꺽 삼켜 소화시켜버린 목울대가 / 툭 불거져나와 구불구불한 / 저 소나무는다음에 마침표가 없다. 의미상으로는 말줄임표가 와야 할 것 같은데 그것도 없다. 저 소나무는 다음에 올 말이 무엇일까. ‘○○이다일까 아니면 ○○하다일까. 그것까지 시인이 말해주지 않는다. 온전히 독자의 몫이리라.


누군가 그랬다. 인생의 문제는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삭아서 저절로 없어지는 것이라고. 대신 이런 저런 흉터는 남을 것이지만 문제를 통째로 삼키는 것은 참으로 대단한 일이다. 정말이지 큰일을 당했을 때 그 문제를 삼켜 소화해 버릴 만한 큰 인물이 누구일까. 그런 인물을 시인은 소나무를 통해 본 것이다. 소나무하면 그저 사시사철 푸른 것만 생각했지 흉터니 구부러진 것 하며 툭 튀어나온 목울대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 것들을 한데 묶어 어느 큰 인물을 만들어낸 시인의 감각이 참 대단하다.


그런데 조 시인이 인생론 설파하듯 그렇게 가르쳐주어 머릿속으로는 그렇게 살아야지 하고 생각하는데, 과연 내가 문제를 삼킬만한 배포나있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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