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권태응의 <감자꽃>

복사골이선생 2018. 9. 28. 03:23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 (126)





감자꽃

 

권태응

 

자주 꽃 핀 건

자주 감자

파보나마나

자주 감자

 

하얀 꽃 핀 건

하얀 감자

파보나마나

하얀 감자

 

 

몇 년 전에 부천의 복사골문학회의 시낭송회 행사에 간 일이 있다. 시 낭송 모임인데 초청 인사들도 한 수씩 낭송을 하게 하여 나도 이육사의 <절정>을 아주 심각한 목소리로 낭송했다. 이때 내가 존경하는 아동문학가 강정규 선생께서 일부러 적어 오셨는지 메모지를 꺼내 읽듯이 시 한 수를 낭송했다. 바로 권태응의 <감자꽃>이다. 사실 강 선생님의 표정과 목소리가 재미있던 데다가 시 내용마저 간단하여 웃음과 박수가 터졌었다.


이 동시를 쓴 권태응은 2005년에 애국지사로 대통령표창이 추서된, 일제강점기 때의 독립운동가이자 시인이다. 그는 일본에 유학 중 동창들과 함께 독서회를 조직해 조국의 독립과 새로운 사회 건설에 대해 논의했는데, 이를 빌미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3년의 징역형을 선고받고 복역했다고 한다. 1941년 고향 충주로 돌아와 농사를 지으며 야학 운영과 창작활동에 전념했다는데, 충주시 칠금동에는 감자꽃 노래비가 세워져 있다.


시의 내용이래야 한글을 아는 사람이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아주 간단한 것이다. 자주 꽃 핀 건 자주 감자이고, 흰 꽃 핀 건 흰 감자, 이는 파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는 말이다. ,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이다. 시 속의 말투가 아주 간단하고 명쾌한 것이 어린이의 순진무구한 사실 확인의 목소리이다. 그러니 그런 동시를 고희를 넘긴 강 선생이 아주 귀엽게(?) 낭송을 했으니 손님들이 모두 웃을 수밖에.


어느 평론가에 따르면 일제 강점기 때 창씨개명을 지시하는 일본인들에게 그 제도를 빗대어서 아무리 일본식으로 이름을 바꾼들 김 가는 김 가이고 이 가는 이 가이며 조선인은 조선인이란 의미로 썼다는데, 그것은 작가론적인 해석일 뿐, 이 동시를 이해하는 금과옥조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고향에서 농사를 지으며 동시를 짓던 시인, 감자 농사의 경험이 바탕이 되어 감자꽃 색깔로 감자의 색을 알 수 있다는 아주 단순한 사실을 있는 그대로, 어린이 목소리로 읊었을 뿐이다.


흰 것은 흰 것이고, 검은 것은 검은 것이라는, 자주감자 심은 데에는 자주 꽃 피고, 흰감자 심은 데에는 하얀 꽃이 피는 진리. 바로 자연이 주는 가장 기본적인 진리를 그저 어린이가 말하듯 읊은 시이다. 그렇기에 이 시 속에 어떤 대단한 시대정신이라든가 아니면 거창한 인생론을 담아 해석할 필요는 없다. 그렇게 되면 속된 말로 오히려 이 시가 다친다. 아니 내가 이렇게 말하는 것 역시 역설적으로 거창한 해석일지도 모른다. 이런 동시는 그냥 통째로 삼키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