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송찬호의 <늙은 산벚나무>

복사골이선생 2018. 9. 13. 17:59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 (123)







늙은 산벚나무

 

송찬호

 

앞으로 늙은 곰은 동면에서 깨어나도 동굴 밖으로

나가지 않으리라 결심했는기라

동굴에서 발톱이나 깎으며 뒹굴다가

여생을 마치기로 했는기라

 

그런데 또 몸이 근질거리는기라

등이며 어깨며 발긋발긋해지는기라

그때 문득 등 비비며 놀던 산벚나무가 생각나는기라

 

그때 그게 우리 눈에 딱, 걸렸는기라

서로 가려운 곳 긁어주고 등 비비며 놀다 들킨 것이 부끄러운지

곰은 산벚나무 뒤로 숨고 산벚나무는 곰 뒤로 숨어

그 풍경이 산벚나무인지 곰인지 분간이 되지 않아

 

우리는 한동안 산행을 멈추고 바라보았는기라

중동이 썩어 꺾인 늙은 산벚나무가

곰 발바닥처럼 뭉특하게 남아있는 가지에 꽃을 피워

우리 앞에 내미는기라

 

 

산벚나무는 장미목 장미과에 속하는, 우리나라 전역의 높은 산 숲 속에 자라는 낙엽활엽 큰키나무이다. 큰 것은 줄기가 높이 20m에 달할 정도로 아주 크다. 그래서 가구재, 건축재, 조각재, 악기재, 장식용 등으로 이용한다. 식물학자의 말에 따르면 벚나무와 형태적으로 유사한데, 성숙한 잎과 잎자루에는 털이 발달하지만 어린잎과 잎자루에 털이 없는 점이 다르다고 한다. 꽃은 4-5월에 흰색 또는 연홍색으로 피며 꽃잎은 둥근데 향기는 없다. 나무 밑둥이 굵고 그 모양이 기묘하여 관상용, 특히 분재나 괴목으로 널리 애용된다.

송찬호의 시 <늙은 산벚나무>를 읽다보면 숲속 고목이 되어 서 있는 산벚나무의 모양이 눈에 보이는 듯하다. 산속에 묻혀 산다는 송 시인, 산길에서 늙은 산벚나무를 만났던 모양이다. 그런데 그 모양이 문득 곰의 형상으로 눈에 들어왔던 모양이다. 그래서 곰의 형상을 닮은 늙은 산벚나무라 말하지 않고 한 편의 이야기로 나무의 모습을 전한다.


이야기는 이러하다. ‘늙은 곰은 동면에서 깨어나도 동굴 밖으로 / 나가지 않으리라 결심했단다. 그런데 몸이 근질거리등이며 어깨며 발긋발긋해지기에 문득 등 비비며 놀던 산벚나무가 생각났다. 그래서 동굴을 나와 늙은 산벚나무에 등을 대고 비비며 가려움증을 식히고 있었는데, 바로 그때 산행에 나선 송 시인 일행의 눈에 띄었단다. ‘그게 우리 눈에 딱, 걸렸는기라란 말 속에 막걸리 잔 앞에 놓고 산행길 이야기를 전하는 털털한 송 시인의 모습이 눈에 선해진다.


곰과 산벚나무는 서로 가려운 곳 긁어주고 등 비비며 놀다 들킨 것이 부끄러운지 / 곰은 산벚나무 뒤로 숨고 산벚나무는 곰 뒤로 숨어 / 그 풍경이 산벚나무인지 곰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단다. 산벚나무가 곰이고 곰이 산벚나무이다. 동물과 나무가 하나가 되어 있는 형상, 그러니 한동안 산행을 멈추고 바라보았을 것이다.


그러다가 한 장면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온다. ‘중동이 썩어 꺾인 늙은 산벚나무가 / 곰 발바닥처럼 뭉특하게 남아있는 가지에 꽃을 피워 / 우리 앞에 내미는모습이다. 가운데가 꺾인 늙은 산벚나무, 그러나 그 몸뚱이에서도 가지를 뻗어 산벚꽃을 피워낸다. 그 꽃이 마치 곰의 형상을 한 산벚나무가 산행을 하던 일행에게 내미는 것처럼 느껴졌던 모양이다. 곰과 나무 그리고 인간까지 하나가 되는 모습이다.

어느 때던가. 분재 전시장에 갔다가 괴목처럼 굵고 뭉툭한 산벚나무가 벚꽃 몇 송이를 피운 것을 본 적이 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곰의 형상을 닮은 괴목, 맞다, 딱 그 모양이다. 산행길에 만난 곰의 형상을 닮은 늙은 산벚나무를 소재로 시인은 한 편의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그냥 곰을 닮았다가 아니라 그 형상을 한 편의 이야기로 구체화하여 독자들에게 보여준다. 시인의 상상력은 이처럼 무궁무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