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박목월의 <산도화(山桃花)>

복사골이선생 2018. 9. 13. 09:34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 (121)







산도화(山桃花)

 

박목월

 

산은 구강산(九江山)

보랏빛 석산(石山)

 

산도화

두어 송이

송이 버는데

 

봄눈 녹아 흐르는

옥같은

물에

 

사슴은

암사슴

발을 씻는다.

 

 

박목월의 시 <산도화(山桃花)>를 읽으며 시 속에 등장하는 구강산(九江山)이나 돌산(석산, 石山)을 지도에서 찾아보려 애쓴다면 시를 잘못 이해하는 것이다. 시인의 다른 시 <청노루>에 등장하는 자하산처럼, 이 시 속의 구강산도 실재하는 산이 아니다. 그러니 우리는 시를 읽으며 보랏빛 돌로 이루어진 구강산이란 산을 머릿속에 설정하면 된다.


돌산이 보랏빛이다? 배경 자체가 환상적이다. 거기에 산도화 두어 송이가 피어난다. 산도화라면 산복숭아, 우리가 흔히 말하는 개복숭아이다. 그 복숭아꽃이 피어나니 바야흐로 봄이다. 봄이 되면 눈이 녹는다. 그 눈이 녹아내린 물 - 바로 옥같이 맑은 물이다. 그 물에 암사슴이 발을 씻는다.


문득 떠오르는 것은 도연명(陶淵明)의 도화원기(桃花源記)와 이를 노래한 이백(李白)의 시 <산중문답(山中問答)>에 나오는 도화유수묘연거 / 별유천지비인간(桃花流水杳然去 / 別有天地非人間)’ - 복사꽃이 물에 떠 아득히 흘러가니 여기가 곧 별천지요 인간세계가 아니라는 구절이다. 즉 구강산은 인간세계가 아닌, 별천지, 다시 말해 무릉도원 혹은 이상향이다.

따라서 박목월이 묘사하고 있는 시 속 풍경은 바로 시인이 그리는 이상향이다. 그러니 한가하다 못해 지극히 평화롭다. 보랏빛 돌산에 흰색, 분홍색 산도화, 옥같은 물에 사향이 풍길 것 같은 암사슴…… 이쯤 되면 비록 가공적인 선경(仙境)이지만 시인이 만들어놓은 구강산에 한 번쯤 가보고 싶지 않겠는가. 비현실적인 일이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풍광을 시를 통해 만들어내는 시인의 상상력이 참 멋지다.


이 시를 일컬어 혹자는 이처럼 꿈과 같은 자연을 그려냄으로써 국토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는 자세는 단순한 현실도피라기보다는 고향의 회복을 추구한 것으로 보아도 좋을 것이라 말하지만, 그런 것까지 염두에 둘 필요는 없지 싶다. 우리는 그저 시인이 그려놓은 선경에 잠시 머물다 가면 그만이지 않은가. 그것도 노래까지 잔잔하게 흥얼거리면 더욱 좋을 것이다. ‘산도화 / 두어 송이 / 송이 버는데에 나타나듯 송이의 반복으로 율격까지 맞춰놓은 시인의 감각을 느끼는 것은 덤일 것이다. ♣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송찬호의 <늙은 산벚나무>  (0) 2018.09.13
이재무의 <감자꽃>  (0) 2018.09.13
조지훈의 <민들레꽃>  (0) 2018.09.13
문효치의 <나도바람꽃>  (0) 2018.09.13
박남준의 <화살나무>  (0) 2018.09.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