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반칠환의 <주산지 왕버들>

복사골이선생 2018. 10. 1. 03:12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 (129)







주산지 왕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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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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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들 젖지 않은 생이 있으려마는

150년 동안 무릎 밑이 말라본 적이 없습니다

피안은 발 몇 걸음 밖에서 손짓하는데

나는 평생을 건너도 내 슬픔을

다 건널 수는 없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신은 왜 낙타로 하여금

평생 마른 사막을 걷도록 하시고,

저로 하여금 물의 감옥에 들게 하신 걸까요

젊은 날, 분노는 나의 우듬지를 썩게 하고

절망은 발가락이 문드러지게 했지만,

이제 겨우 사막과 물이 둘이 아님을 압니다

이곳에도 봄이 오면 나는 꽃을 피우고

물새들이 내 어깨에 날아와 앉습니다

이제 피안을 지척에 두고도 오르지 않는 것은

나의 슬픔이 나의 꽃인 걸 어렴풋이

알았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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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산지는 경북 청송군에 있는 주왕산 자락에 위치한 저수지로 조선 숙종 때인 17208월에 착공하여 172110월에 완공되었다고 한다. 여러 차례의 보수공사를 거쳐 현재에 이르는데, 주변 산에서 흘러내려온 물이 주산 저수지에 고이면서 아랫마을에 농업용수로 쓰인단다. 사실 주왕산 절골의 아름다운 산세와 함께 주산지의 경치가 아름다워 사진작가들에게만 알려져 있던 곳이었는데, 영화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의 촬영지로 알려지며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크게 늘어났다고 한다.

그 중에서도 특히 왕버들 군락이 만들어낸 경치가 아름다운데 이 왕버들은 주산지 호수와 함께 청송군의 관광상품이 되었다. 본디 왕버들은 우리나라 토종으로 버드나무과에 속하는 갈잎 큰키나무이다. 키는 10m에서 20m까지 자라며 주로 습지나 냇가에 자란다. 주산지 호수에 서식하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물 속에서도 줄기나 뿌리가 썩지 않고 살 수 있다고 한다. 암수딴그루로, 4월에 잎과 함께 꽃이 핀다.

반칠환의 시 <주산지 왕버들>에서는 지금까지 사진작가의 피사체였던 주산지 호수 안의 왕버들이 자신의 속내를 풀어내고 있다. 우리들 누구나 젖지 않은 생이 있으려마는주산지의 왕버들은 ‘150년 동안 무릎 밑이 말라본 적이 없다고 한다. 물 속에 뿌리를 내리고 선 왕버들 - 150년을 그렇게 서 있었다는 말이다. 세월이 흐르며 피안은 발 몇 걸음 밖에서 손짓하지만 왕버들은 평생을 건너도자신의 슬픔을 / 다 건널 수는 없다고 생각했단다. 생의 목표를 잃어버린 것으로 판단할지 모르나 실은 이미 그런 것을 초월한 삶이리라.


신은 왜 낙타는 평생 마른 사막을 걷도록 하고 자신은 물의 감옥에 들게 하였는지를 왕버들은 묻고 있으나 실은 자문자답이다. 왕버들이 젊었던 시절, 분노는 왕버들의 우듬지를 썩게 하고 / 절망은 발가락이 문드러지게 했다고 한다. 물에 잠겨 있어서가 아니니 맨 꼭대기 가지가 썩은 것은 젊은 시절의 분노 때문이란다. 즉 왜 나만 물 속에 갇혔나를 억울하게 생각했고 그 생각이 가지 끝 - 우듬지를 썩게 했다는 것이리라. 결국 물 속에 갇혀 있어 발가락도 문드러지고 만다.

그런 이후에야 왕버들은 이제 겨우 사막과 물이 둘이 아님을알게 된다. 결국 낙타가 갇혀 있는 사막이나 왕버들이 서 있는 호수의 물이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낙타가 사막에서 살아가듯이 왕버들 자신은 물 속에서 살아야 할 운명이라는 것 - 그렇기에 그 운명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고 순응하는 것이리라. 그러니 봄이 오면 꽃이 피고 새들이 날아와 피안으로 나갈 것을 유혹하지만 피안이 지척이라도 물 밖 땅으로 오르려 하지 않는단다.

왜 그럴까. 왕버들 자신은 나의 슬픔이 나의 꽃인 걸 어렴풋이 / 알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고 한다. ‘나의 슬픔이 나의 꽃이란 인식 - 어찌 슬픔이 꽃으로 변할까. 왕버들은 자신이 서 있는 호수 안 물 속이 자신이 서 있어야 할 곳이요 그것은 그에게 주어진 운명이며 그 운명에 순응하는 것이 자신이 살 길이란 것을 깨달은 것이리라.

맹자님이 그러셨던가. 하늘의 뜻에 순종하는 자는 번영과 생존을 누리고 거스르는 자는 망한다(順天者存逆天者亡). 왕버들은 물 속에서 150년을 지내며 그것을 깨달았으리라. 사실 왕버들은 습지에서도 잘 자란다. 그러니 물 속에 서 있어도 줄기나 뿌리가 결코 썩지 않는다. 마치 수생식물과 같은 특성이다. 그렇기에 주왕산 주산지 호수 안에 왕버들이 150년 아니 300년 동안 서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주산지 호수 안의 왕버들을 보며 운명에 순응하는 삶의 자세를 설파하는 시인. 어찌 우리들 삶에 젖지 않는 것이 있겠는가. 그러나 시인은 젖은 인생에 분노하지 말고 혹은 억울해 하지 말고 하늘의 뜻에 순응하는 삶을 바로 주산지의 왕버들로부터 읽어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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