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김봉용의 <가시연꽃>

복사골이선생 2018. 10. 1. 03:42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 (131)







가시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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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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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하루만이라도

짙은 물음표로 살고 싶어

이른 아침 우포늪에 가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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늪 한 복판

물안개 깔린 잎 방석 위

가시연이 홀로 아침을 먹는다

고전으로 한복 차려입은 그녀는

이슬 먹고 꽃을 피운다

한번 묻고 싶다

무엇이 세상 속으로 돌아갈 수 없게 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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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선()을 이어서

길 찾아 가는 것

마음이 와글와글 복잡할 때

한 자리에서 기다려주면

문 열어 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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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연꽃은 수련과의 일년생 수생식물이다. ‘개연혹은 철남성이라고도 하는데 가시연은 가시가 많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특히 잎과 열매 그리고 꽃대에는 가시투성이이다. 78월에 꽃자루가 물 위로 올라와 끝에 1개의 자줏빛 꽃이 핀다. 꽃자루는 종종 잎을 뚫고 올라오기도 한다. 한방에서는 가시연 씨를 감실이라 하여 가을에 채취하여 강장제로 사용하며, 뿌리를 감인근, 잎을 감인엽이라 하여 약용하며 뿌리줄기는 식용하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북으로 강릉까지 연못에 자생하였으나 수질 오염에 특히 민감하여 현재는 멸종위기에 놓여 있다고 한다.

김봉용의 시 <가시연꽃>은 우포늪에 자라는 가시연꽃을 보며 사랑의 그리움 그리고 기다림을 노래한다. 시 속 화자는 문득 왜 사는가 하는 생각을 하며 이른 아침 우포늪에 가본모양이다. ‘짙은 물음표로 산다는 것은 왜 사는가란 의문일 텐데 화자는 왜 그런 생각을 했을까. 시 전체의 맥락을 보면 누군가를 무척 기다리는 모양이다. 사랑을 고백했는데 답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세상으로 나가기가 겁이 났던 모양이다. 그렇게 두문불출 하다가 문득 왜 사는가 하는 의문이 생겼던 모양이다.

우포늪에 온 화자는 늪 한 복판에 피어 있는 가시연을 만난다. 그런데 가시연이 물안개 깔린 잎 방석 위에서 아침을 먹는것으로 본다. 어쩌면 화자가 아침도 먹지 않고 우포늪으로 왔을지 모른다. 그러니 거기서 만난 가시연이 아침을 먹는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이른 아침에 왔으니 물안개에 가시연꽃 잎에 이슬이 맺혔던 모양인데 화자는 이를 가시연이 이슬을 먹는 것으로 나아가 아침을 먹는 것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화자의 눈에 비친 가시연은 고전으로 한복 차려입고 있다. 가시연꽃을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고전그리고 한복이란 시인의 표현에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그만큼 가시연꽃은 곱다. 이슬을 먹고 꽃을 피우니 그 꽃 또한 이슬만큼 영롱할 것이 아닌가. 그런데 화자는 가시연꽃에게 한번 묻고 싶다고 한다. 화자가 묻고자 하는 것은 가시연꽃으로 하여금 무엇이 세상 속으로 돌아갈 수 없게 하는지이다. 화자의 인식은 누군가 아니면 무엇인가가 가시연꽃을 세상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다. , 가시연꽃이 우포늪에 갇혀 있다는 생각이다.

화자는 왜 그렇게 생각을 할까. 마지막 연을 보면 알 수 있다. 화자의 생각에 사랑은 선()을 이어서 / 길 찾아 가는 것이란다. 그런데 화자는 그 사랑을 찾지 못했던 모양이다. 그러니 짙은 물음표로 우포늪을 찾지 않았겠는가. 그곳에서 가시연꽃을 보고, 꽃도 우포늪에서 세상으로 나아가지 못한 것으로 생각하고는, 사랑을 잃고 두문불출 한 자신과 동일시하여 그렇게 묻지 않았을까.

그리고는 다시 생각해 본다. 싱숭생숭 마음이 복잡한 화자의 생각이다. 바로 한 자리에서 기다려주면 / 문 열어 줄까란 생각 - 기다리면 그가 찾아올까 하는 생각이다. 아니 뒤집어 보면 한 자리에서 끝까지 기다리면 내 사랑을 임이 받아줄까 하는 생각, 그만큼 화자는 임을 그리워하며, 가시연꽃이 우포늪에 갇혀 있다고 생각하듯이 화자 자신이 마음의 감옥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고전으로 한복 차려입은 가시연꽃이 세상 속으로 돌아가 아름다운 자태를 보여주지 않고 왜 태고의 적막이라는 우포늪에 갇혀 있을까. 누가 그렇게 만들었을까. 어쩌면 스스로 갇혀 있는 것은 아닐까. 가시연꽃의 꽃말은 그대에게 소중한 행운이라고 한다. 어쩌면 가시연꽃은 사랑을 잃고 우포늪을 찾아오는 화자와 같은 사람들에게 한 번의 기회, 소중한 행운을 주려는지도 모른다. 화자도 그런 행운을 받아 사랑하는 사람과 연락이 되었으면 참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