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조두섭의 <배롱나무>

복사골이선생 2018. 10. 1. 05:05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 (133)







배롱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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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두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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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항아리

누가 어둠속에서 깨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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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겋게 달아오른 가마 속 익은 황토가

이슬방울을 폭우 뿜어내도록

불꽃의 혀가 빠져나오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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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육신에 촘촘하게 박힌

수천만의 푸른 별이

화들짝 놀라 비명을 내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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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절망이 아니라 고통이라면

달빛 사금파리야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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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의 정점에서 피어나는

황홀한 꽃잎 꽃잎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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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마저 산산조각 깨트려버리는

첫새벽 허공은 누가 제 영혼

갈증의 가마에서 구워낸 푸른 항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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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워서, 또 비워서 어둠마저 차오르는

눈부신 항아리

남쪽바다 검은 소나기 몰려와 닦고

가는 빈 항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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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생애 얼마나 깊고 넒어야

거기 분홍으로 가득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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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꽃이 백일을 아름답게 피어 있는 게 아니다 / 수없는 꽃이 지면서 다시 피고 / 떨어지면 또 새 꽃봉오릴 피워 올려 / 목백일홍나무는 환한 것이다

도종환의 시 <백일홍>에 있는 말이다. 시인이 말하는 백일홍은 목백일홍즉 배롱나무를 가리킨다. 물론 시인은 정확하게 관찰했다. 배롱나무꽃은 꽃이 피어 백일 동안 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꽃 하나가 피고 지면 그 옆에서 다른 꽃이 피어나 계속하여 피고지기에 우리는 100일 동안 피는 꽃으로 잘못 알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꽃이 100일 동안 핀다 하여 백일홍나무라 하였고, 세월이 지나며 배기롱나무로 변했다가 배롱나무가 된 것이다.

본디 배롱나무는 중국 남부가 고향인데 우리나라에는 고려 말 이전에 들어온 것으로 짐작하고 있다. 중국에서는 자미성 안에 많이 심어 자미화(紫微花)’라고 했다는데 글자로는 보라색이지만 붉은색, 분홍색, 흰색이 있다. 배롱나무꽃은 여름꽃으로 햇볕 뜨거운 여름에 꽃을 피운다. 산과 들이 모두 초록일 때에 분홍 혹은 붉은 색으로 피기에 꽃이 한층 돋보인다.

조두섭의 시 <배롱나무>는 배롱나무꽃을 항아리가 뿜어낸 불꽃으로 본다. 시인이 시 속에 묘사한 배롱나무는 몇 백 년 묵은 고목일 것이다. 그렇기에 배롱나무의 줄기 혹은 밑둥을 푸른 항아리로 보고 있다. 그리고 꽃이 피는 것을 그 항아리를 누가 어둠속에서 깨트리고 있는 것으로 파악한다.


항아리라면 벌겋게 달아오른 가마 속 익은 황토일 것이요 그 항아리가 마치 이슬방울을 폭우 뿜어내는 것처럼 그리고 불꽃의 혀가 빠져나오는 것처럼 꽃을 피우는 것이다. 그렇게 꽃이 필 때 항아리 자체에 박혀 있던 수천만의 푸른 별이 / 화들짝 놀라 비명을 내지른다고 한다. 이 푸른 별을 시인은 달빛 사금파리로 보고 이를 다시 고통의 정점에서 피어나는 / 황홀한 꽃잎 꽃잎들이라 한다. 즉 푸른 항아리인 배롱나무 속에서 붉은 혀가 빠져나오듯, 항아리가 부서지며 사금파리 조각이 되듯 피어난 것이 배롱나무꽃이란 인식이다.


그런데 언뜻 보기에는 시인의 시선이 배롱나무꽃에 가 있는 것 같지만 실은 나무 그 자체에 집중한다. 서술을 하기 위해 꽃이 피어나는 과정을 항아리 - 불꽃의 혀 - 푸른 별 - 사금파리 - 꽃잎 꽃잎들로 이어지지만 시인은 나무에 집중한다. 그렇기에 꽃을 피워낸 모습을 향기마저 산산조각 깨트려버리는 / 첫새벽 허공이라 하면서 이를 누가 제 영혼 / 갈증의 가마에서 구워낸 푸른 항아리로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단순한 나무가 아니다. ,시인은 꽃을 피우고 또 피우는 모습을 배롱나무가 자신을 비우고 또 비우는 것으로 본다. 그렇게 비운 끝에는 어둠마저 차오르는 / 눈부신 항아리가 되는 것이다. ‘남쪽바다 검은 소나기 몰려와 닦고 / 가는 빈 항아리’ - 소나기에 몸을 씻은 배롱나무의 매끄러운 껍질이다. 여기서도 시인은 나무 그 자체에 시선을 둔다. 그 나무가 피워낸 배롱나무꽃 - 시인이 본 꽃은 분홍색이다. ‘한 생애 얼마나 깊고 넒어야 / 거기 분홍으로 가득할까라 하는 것은 분홍꽃을 피운 배롱나무의 삶이 깊고 넓기에 그 안에 분홍으로 가득 차 있다는 뜻이다.


결국 시인의 인식에 따르면 분홍색 배롱나무꽃은 바로 배롱나무의 전 생애가 만들어낸 깊고 넓은 삶 그 자체라는 것이다. 삶이 깊고 넓으면 분홍으로 가득찬다는 생각 - 꽃이 분홍색이었기에 그렇게 판단했으리라. 푸른 항아리로 본 배롱나무, 그만큼 오래된 굵고 껍질이 매끄러운 몇 백 년 묵은 배롱나무일 것이다. 강진 백련사, 고창 선운사, 경주 서출지, 강릉 오죽헌 등지에 가면 시에 어울리는 굵고 오래된 배롱나무를 볼 수 있다.


그런데 어찌 나무를 푸른 항아리라 했을까. 시를 읽고 다시 배롱나무를 생각해 보니 그렇게 보인다. 그 항아리 안에 분홍 혹은 붉은 것이 가득 차 있을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