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이가림의 <석류>

복사골이선생 2018. 10. 7. 06:55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 (134)






석류

 

이가림

 

언제부터

이 잉걸불 같은 그리움이

텅 빈 가슴속에 이글거리기 시작했을까

 

지난여름 내내 앓던 몸살

더 이상 견딜 수 없구나

영혼의 가마솥에 들끓던 사랑의 힘

캄캄한 골방 안에

가둘 수 없구나

 

나 혼자 부둥켜안고

뒹굴고 또 뒹굴어도

자꾸만 익어가는 어둠을

이젠 알알이 쏟아놓아야 하리

 

무한히 새파란 심연의 하늘이 두려워

나는 땅을 향해 고개 숙인다

 

온몸을 휩싸고 도는

어지러운 충만 이기지 못해

나 스스로 껍질을 부순다

 

아아 사랑하는 이여

지구가 쪼개지는 소리보다

더 아프게

 

내가 깨뜨리는 이 홍보석의 슬픔을

그대의 뜰에

받아주소서

 

 

붉은 구슬이 한가득 차 있는 듯한 석류 - 가을에 빨갛게 입을 벌린 석류는 참 아름답다. 지름 6~8cm에 둥근 모양의 석류는 단단하고 노르스름한 껍질이 감싸고 있는데 과육 속에는 많은 종자가 있다. 잘 익으면 껍질이 스스로 벌어지는데 실제 먹을 수 있는 부분이 약 20% 정도 된다고 한다. 과육은 새콤달콤한 맛이 나고 껍질은 약으로 쓰이며 단맛이 강한 감과와 신맛이 강한 산과로 나뉜다. 원산지는 서아시아와 인도 서북부 지역이며 한국에는 고려 초기에 중국에서 들어온 것으로 추정한다. 많이들 알고 있지만 석류에는 여성호르몬 유사 성분이 풍부하여 여성의 과일이라고 불리는데 주로 차로 끓여 마시거나 즙을 내 먹고 날로 먹기도 한다.

이가림의 시 <석류>는 석류 과육 속 많은 종자들을 홍보석으로 파악, 이를 사랑의 힘으로 환치시킨다. 즉 사랑하는 임을 향한 시 속 화자의 마음이 석류의 과육으로 환치되어 임에게 바치는 것으로 표현된다. 화자가 임을 그리는 마음은 잉걸불 같은 그리움이다. 단순한 것이 아니라 여름 내내 텅 빈 가슴속에 이글거린 것이다. ‘잉걸불이라니, 불이 이글이글 불타는 숯덩이가 아닌가. 그만큼 뜨거운 사랑이다.


그 이글거림은 화자에게는 몸살이었고, 가을이 되어 이제 더 이상 견딜 수 없다고 한다. 왜냐하면 영혼의 가마솥에 들끓던 사랑의 힘을 껍질 속 캄캄한 골방 안에 / 가둘 수 없기 때문이란다. ‘혼자 부둥켜안고 / 뒹굴고 또 뒹굴어도 / 자꾸만 익어가는 어둠’ - 즉 껍질 속에 갇혀 있는 그 그리움을 이젠 알알이 쏟아놓아야 하겠단다. 혼자만 그리워하며 속을 끓일 것이 아니라 이제는 임에게 고백하고픈 것이리라.


고백을 하기 전에 화자는 무한히 새파란 심연의 하늘이 두렵다. 임이 자신을 어찌 생각하고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리라. 그러니 땅을 향해 고개 숙인다.’ 그러나 누군가가 껍질을 열어 주지 않는다. 그럴수록 온몸을 휩싸고 도는 / 어지러운 충만 이기지 못하고 결국에는 스스로 껍질을 부순다.’ 스스로 껍질을 부수는 것은 임에게 보이기 위함이리라. 그러나 껍질을 부수는 일은 지구가 쪼개지는 소리보다 / 더 아픈일이다. 그러나 얼마나 그리워한 임인가.

혼자 속앓이를 하며 애태웠을 화자 - 그러니 아아 사랑하는 이여라 부르며 그 아픔을 딛고 이제 임에게 고백한다. 즉 화자가 깨뜨리는 이 홍보석의 슬픔을 / 그대의 뜰에 / 받아주소서란 고백이다. 여름 내 익어갔을 석류. 가을이 오면 그 무게 때문에라도 땅을 향하고 어느 순간 껍질이 부서지며 안에 있는 과육이 드러난다. 더 익으면 그 과육도 흘러내린다. 얼마나 그리웠으면, 얼마나 홀로 끙끙 앓았으면, 얼마나 뜨거웠으면 잉걸불이 되어 스스로 껍질을 부수고 그 마음을 드러내겠는가. 그만큼 애타는, 그러나 꼭 보여줘야만 할 마음이었을 것이리라.


석류의 이런 모습을 시인은 사랑하는 임을 향한 그리움으로 파악한다. 이런 사랑이라면 임도 받아주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