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원태경의 <미스김 라일락>

복사골이선생 2018. 10. 1. 03:31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 (130)






미스김 라일락

 

원태경

 

잘 웃는 미스 김 웃을 때

설핏 드러나는 덧니 예쁘다.

통째로 양키에게 뽑혀가

바다 건너 비린 것들 틈에서

다시 몇 번 구르는 사이

거웃조차 노리장해지고 혀가 꼬여서

더는 나랏말쌈과 사맛디 아니할 제

다시 뽑히고 꺾어지고 휘어져

수수꽃다리 절름절름

돌아온 그 여자

 

그래도 물 건너 꼬부랑말 배웠으니

학원 시장에 과외 장터

로열티 비싼 몸

돈방석에 앉았다는데

바다 먼 데 남기고 온 자식 생각

눈물 콧물 보태어 털어 보내고

 

지질 궁상떨며 사노라

미스김 라일락

 

 

미스김라일락은 본디 우리나라 토종인 수수꽃다리가 미국으로 반출된 후 그 품종이 개량된 라일락을 가리킨다. ‘수수꽃다리는 흔히 개회나무라 부르는데 향기가 짙다하여 정향(丁香)나무라고도 한다. 미군정기였던 1947년에 캠프잭슨에 근무하던 군정청 소속 식물 채집가 엘윈 M. 미더(Elwin M. Meader)가 현재의 북한산국립공원에서 자라고 있던 수수꽃다리종자를 채취, 미국으로 가져가 개량해서 미스김 라일락(Miss Kim Lilac, Syringa patula “Miss Kim”)’이라는 품종을 만들어 특허출원을 한 것이 바로 미스김라일락이다.

당시 자료 정리를 도왔던 한국인 타이피스트 미스김의 성을 꽃 이름에 붙인 것이라 하는데, 가지가 제멋대로 뻗는 기존의 미국 라일락과는 달리 개량된 미스김라일락은 아담한 수형(樹形)과 병해충에 강한 것은 물론 짙은 향기로 조경용 혹은 관상용으로 크게 인기를 끌었다. 현재 전 세계 라일락 시장의 1/3 이상을 점유할 정도로 사랑을 받고 있는데, 70년대 이후 우리나라에도 매년 비싼 로열티를 지불하며 역수입하고 있다고 한다.

원태경의 시 <미스김 라일락>에서 시인은 미스김라일락의 태생과 관련하여 본디 우리 토종이었던 꽃이 미국에 건너가 개량된 후 역수입되어 사랑을 받는 모습을 비판적 시각으로 바라본다. ‘미스 김이란 이름에서는 사무실의 꽃이라는 여직원의 미소가 떠오를 것이다. 그러나 꽃으로서 미스김통째로 양키에게 뽑혀가버린 우리 꽃이다. 그 미국 생활을 시인은 비아냥거린다.

바다 건너 비린 것들 틈에서 / 다시 몇 번 구르는 사이는 미국으로 건너가 몇 번의 개량이 이루어진 것을 말하는 것이다. ‘거웃조차 노리장해지고 혀가 꼬였다는 것은 한국의 꽃이 미국의 꽃으로 완전히 변하여 거웃(음모, 陰毛)’마저 검은 색이 아니라 노란색으로 변했을 뿐만 아니라 우리말을 잊고 영어에 익숙해져 있으니 혀가 꼬인 것으로 파악한다. 그러니 더는 나랏말쌈과 사맛디 아니할 제, 우리말로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다. 시인은 그렇게 우리 꽃 수수꽃다리가 본디의 모습을 잃고 절름발이로 돌아온 그 여자가 되어 버렸다고 파악한다. 어쩌면 단기 외국 생활을 하고 귀국한 사람이 마치 한국말을 잊은 듯이 영어를 씨부리며 외국인 흉내 내는 것을 비꼬고 있는 듯하다.

다음 연에서도 이런 비판은 이어진다. 미국에서 왔으니 영어는 잘 할 것이요, 그러니 입시학원가에서 영어 과외를 하며 돈을 잘 벌 것이다. 즉 역수입되며 비싼 로열티를 지불해야하는 것을 지적한다. 그러나 미스김라일락도 생물이다. 이를 시인은 바다 먼 데 남기고 온 자식 생각 / 눈물 콧물 보태어 털어 보내는 것으로 본다. 한국 토종이 미국에 가 개량되어 본디 모습을 잃고 다시 귀국하여 익숙한 영어로 과외를 하며 돈방석에 앉았다지만 미국에 두고 온 자식 생각을 하며 눈물 콧물 흘리는 것은 여느 여자와 마찬가지이다.

이를 시인은 지질 궁상떨며 사는 것으로 인식한다. 시인이 그러거나 말거나, 아니 아무리 비판을 해도 본디 수수꽃다리나 미국에서 자란 기존의 라일락보다 꽃도 좋고 어떤 기후에도 잘 견디며 향이 짙으니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밭고 있다. 그렇다고 시인의 비판을 요즘 말하는 국뽕으로 폄하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왜냐하면 시인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결코 일방적으로 미스김라일락만 비판하는 것이 아니다. 그 이면에는 수수꽃다리에 대한 애정과 함께 그 애정이 이어져 꽃을 사랑하는 마음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물론 시인은 미스김라일락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 태생이 어떠했는지를 알고는 수수꽃다리에 대한 애정 혹은 순수한 애국심이 발동하여 양키에게 뽑혀갔다고 하고, 바다 건너 비린 것들 틈에서라 말하며 거웃조차 노리장해지고 혀가 꼬였다고 말한다. 이는 어쩌면 비아냥을 넘어 지나친 애국일지 모른다. 그러나 실은 그마큼 수수꽃다리에 대한 애정, 꽃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기에 그런 비판도 나오는 것이다. 이는 첫 두 행에 잘 웃는 미스 김 웃을 때 / 설핏 드러나는 덧니 예쁘다.’고 한 것에 드러난다. 태생이 어떻든 미스김라일락이란 꽃은 아름답다는 의미가 된다.


사실 우리 토종 식물이 외국에 나가 개량되어 역수입되는 것이 수수꽃다리뿐이겠는가. 미국과 유럽에서 크리스마스트리로 인기를 끌고 있는 나무도 지리산 구상나무가 수출되어 개량된 것이 아니던가. 비록 비아냥으로 일관한 시라고는 하지만 그 비아냥에 재치가 넘치고 그 안에 담긴, 꽃을 사랑하는 시인의 마음까지 읽을 수 있어 시를 읽는 맛이 난다. 게다가 이런 시를 통해 독자들로 하여금 우리 것의 소중함을 다시 생각해 보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