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이정록의 <대추나무>

복사골이선생 2018. 10. 23. 01:04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 (141)







대추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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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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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만으로 가볍게 겨울을 건널

다섯 살 바기 대추나무 두 그루에

무밭 한 뙈기가 걸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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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솜털가시 싯푸른 무 줄거리들

눈비 맞으며 말라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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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바닥으로 머리를 디미는 시래기의 무게와

옆구리 찢어지지 않으려는 어린 대추나무의 버팅김이

떨며 떨리며, 겨우내 수평의 가지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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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되면 한없이 가벼워진 시래기가

스런스런 그네를 타고, 그해 가을

버팀목도 없이 대추나무는

닷 말 석 되의 대추알을 흐드러지게 매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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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부에 임금 왕자가 나타나는 근육질의 남자는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다. 하긴 남성이 보아도 때론 부럽다. 그러나 그런 근육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노력을 했는지를 알면 아무나 쉽게 도전하지 못한다. 팔뚝이나 가슴의 근육도 마찬가지이다. 굳이 용불용설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아령이나 역기를 반복적으로 들었다 내리며 근육의 힘을 길러야만 한다. 즉 무거운 것을 자꾸 들어 자연스레 근육에 힘이 생기고 불어나는 것이다. 이정록의 시 <대추나무>를 읽다가 문득 근육질의 남자가 역기를 드는 모습을 생각했다. 시인은 대추나무도 그런 힘을 길렀기에 많은 대추를 달게 된 것이라고 파악한다.

본디 대추나무는 갈매나무과의 낙엽활엽 교목으로 큰 것은 높이 10~15m 정도까지 자라며 주로 마을 부근에서 재배한다. 우리나라 전역과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 유럽 등지에 분포하는데 나무에 가시가 있고 마디 위에 작은 가시가 다발로 나며, 잎은 어긋나고 긴 달걀 모양이다. 재질이 단단하여 판목(版木)이나 떡메, 달구지 재료로 쓰이는데, 어려운 일에 잘 견뎌 내는 모진 사람을 가리켜 대추나무 방망이같다고 하는 것은 그만큼 대추나무의 재질이 단단한 데에서 온 말이다.

그러나 시인은 대추나무의 재질이 단단한 것을 선천적 요인으로 파악하지 않는다. 오히려 후천적으로, 부단한 노력의 결과로 인식한다. 시인이 다섯 살 바기 대추나무 두 그루에 / 무밭 한 뙈기가 걸쳐 있는 것을 본 모양이다. 잎이 다 진 대추나무는 가지에 난 가시만 달고 겨울을 나는데 주인이 무밭 한 뙈기에서 캔 무에서 무청만을 잘라 엮어서는 대추나무에 걸어놓은 모양이다. 즉 시래기를 말리는 것이다. 내추나무에 걸린 시래기들 - ‘, 솜털가시 싯푸른 무 줄거리들은 이제 눈비 맞으며 말라갈 것이다.


한 뙈기 밭이라 했으니 무청의 양도 엄청날 것이다. 그런데 다섯 살 박이 대추나무는 그 무게를 이겨낸다. 중력의 법칙에 의해 대추나무에 걸린 시래기들은 무게 중심이 아래로 향할 것이고 반대로 대추나무 가지들은 아래로 향하려는 시래기의 무게를 이겨내려고 버틴다. 대추나무는 떨며 떨리며겨우내 단련이 될 것이다. 근육질의 팔뚝을 만들려 아령이나 역기를 들어 올리는 남자를 연상시킨다.


겨우내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던 시래기는 웬만큼 마른 봄이 되면 가벼워진다. 그러면 시래기는 봄바람을 타고는 대추나무 가지에서 스런스런 그네를탈 것이다. 그렇다면 대추나무는 어떻게 되었을까. 겨우내 눈비 맞은 시래기를 매달고 있느라, 떨어뜨리지 않으려 버티느라 분명 가지는 더욱 단단해졌을 것이다. 그러니 가을이 되면 대추나무는 버팀목도 없이수많은 대추알을 달 수 있다. 그것도 닷 말 석 되의 대추알을 흐드러지게 매다는 것이.


사과나 배 혹은 복숭아 과수원에 가면 나무에 버팀목을 해 둔 것을 볼 수 있다. 매달려 있는 사과, , 복숭아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가지가 부러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대추나무는 버팀목을 하지 않는다. 왜 그럴까. 대추 닷 말 석 되면 얼마나 무겁겠는가. 그러나 겨우내 시래기를 매달고 훈련을 했기에 대추나무 가지는 단단하다. 그렇기에 대추 닷 말 석 되도 가볍게 매달고 있게 되는 것이다.


물론 시래기를 매달았기에 대추나무가 단단해진 것은 아니다. 재질이 단단한 것은 그런 훈련의 결과가 아니라 대추나무의 본성이요 특질이다. 그러나 시인은 사물을 관찰하며 그 결과에 의미를 부여한다. 바로 가을에 시래기를 매달고 겨울을 난 대추나무와 이듬해 가을에 흐드러지게 매달린 대추 열매를 보며 닷 말 석 되대추의 무게를 버텨내는 힘이 바로 겨우내 시래기를 매달라 힘을 길렀기 때문인 것으로 파악하는 것이다.


이 시를 읽으며 말도 안돼라고 하는 것은 시를 잘못 이해한 것이다. 물론 시 속 내용은 논리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시인이 의도하는 것은 어떤 사물에 의미를 부여하는 일이다. 버팀목도 없이 흐드러진 대추를 달고 있는 것은 겨우내 시래기를 매달아 훈련을 한 결과라는 인식 - 바로 대추나무에 의미를 부여하고 거기에서 교훈을 이끌어내는, 문학이론에서 말하는 알레고리 기법이다. 시인의 섬세한 관찰력 그리고 이렇게 그 대상에 의미를 부여는 것 - 시 창작 초심자들이 배워야 할 기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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