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이돈희의 <억새>

복사골이선생 2018. 10. 25. 13:59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 (146)







억새

) --> 

이돈희

) --> 

높새바람 세차도

느린 춤을 추는 느긋함이여

) --> 

마른 꽃 보듬고

서서 죽은 풀이여

) --> 

청대 같은 젊은 날

추억 속에 묻어 버리고

) --> 

바람만 먹고도

겨울 나는

하얀 노후여

) --> 

) --> 

억새는 전국 산야의 햇빛이 잘 드는 풀밭에서 큰 무리를 이루고 사는 대형 여러해살이풀이다. 줄기는 마디가 있는 속이 빈 기둥모양이고 곧게 서며 키가 1~2m 정도 된다. 굵고 짧은 땅속줄기가 있으며, 여기에서 줄기가 빽빽이 뭉쳐난다. 예전에는 불쏘시개로 많이 썼지만 부엌이 개량된 지금은 농촌에서도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는다. 그러나 가을의 정취를 느끼게 해 주는 풀로 공원이나 산보길에 관상용으로 많이 심기도 한다.

이돈희의 시 <억새>는 우리가 놓쳤을지도 모르는, ‘억새의 특성을 재정립해 놓고 있다. , ‘억새예찬이다. 아주 약한 바람에도 억새는 줄기만이 아니라 꽃도 흔들린다. 그러나 시인의 눈에는 그렇지 않다. 세찬 높새바람에 흔들리는 억새를 시인은 느린 춤을 추는 느긋함으로 본다. 가을이면 억새꽃은 하얗게 말라버린다. 이를 시인은 마른 꽃 보듬고 / 서서 죽은 풀이라 인식한다. 서서 죽다니? 무릎 꿇고 사느니 서서 죽겠다는 결연한 저항의식이 아닌가.

살아가며 왜 젊은 날을 추억하지 않겠는가. 억새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나 그 추억에 매달리지는 않는다. 억새는 청대 같은 젊은 날을 그냥 추억 속에 묻어 버린단다. 그리고는 바람만 먹고도 / 겨울 나는 / 하얀 노후가 바로 억새이다. 식물이니 이슬이라든가, 광합성이라든가 뭔가 양식이 있을 것이지만, 그저 불어오는 바람만 먹어도 평화로운 노후가 된단다.


전체 4 연에 각 연마다 핵심적인 억새의 특징이 담겨 있다. 느긋함, 곧음, 깨끗함 그리고 여유가 그것이다. 산길 들길을 걷다가 만난 억새밭 - 나는 그저 바람에 날리는 억새꽃의 아름다움만 보고는 장관이라고 감탄만 했는데, 시인은 거기서 우리가 새겨들어야 할 덕목을 읽고 있다. 그것이 바로 시인의 눈이리라. ♣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조정권의 <코스모스>  (0) 2018.10.26
이영광의 <나팔꽃>  (0) 2018.10.25
김춘수의 <달맞이꽃>  (0) 2018.10.25
문성혜의 <백일홍>  (0) 2018.10.25
이수익의 <구절초>  (0) 2018.1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