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조정권의 <코스모스>

복사골이선생 2018. 10. 26. 02:34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 (148)







코스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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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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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삼촉보다 어두운 가슴을 안고 사는 이 꽃을

고사모사(高士慕師)꽃이라 부르기를 청하옵니다

뜻이 높은 선비는

제 스승을 홀로 사모한다는 뜻이오나

함부로 절을 하고 엎드리는

다른 무리와 달리, 이 꽃은

제 뜻을 높이되

익으면 익을수록

머리를 수그리는 꽃이옵니다

눈감고 사는 이 꽃은

여기저기 모여 피기를 꺼려

저 혼자 한 구석을 찾아

구석을 비로소 구석다운 분위기로 이루게 하는

고사모사꽃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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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모스는 멕시코 원산의 쌍떡잎식물 한해살이풀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관상용으로 널리 심는 가을꽃으로 연한 홍색, 백색, 연한 분홍색 등의 여러 가지 색깔이 있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조물주가 이 세상을 아름답게 하기 위해 제일 처음 만든 꽃이라는데, 처음 만들다보니 모양과 색을 이렇게 저렇게 서로 다르게 만들어보다가 지금의 하늘하늘하고 여러 가지 색을 가진 코스모스가 만들어졌다고 한다.

꽃이 가냘픈 줄기 끝에 피고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는 모습에서 흔히 가냘픈 여인의 이미지 혹은 소녀가 가을바람에 수줍음을 타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그런지 꽃말도 소녀의 수줍음이라고 한다. 어느 선교사가 이 꽃을 들여와서 살랑 살랑 살살거리는 모습 때문에 살사리꽃이라 불렀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그런데 조정권의 시 <코스모스>에서는 이 꽃에 대한 우리들의 고정관념을 뒤집어엎는다. 결코 가냘픈 여인이라거나 수줍음 많은 소녀가 아니란 것이다. 첫 행에서부터 시인은 우리들과는 다르게 꽃을 본다. 해맑은 꽃 색깔과는 달리 십삼 촉보다 어두운 가슴을 안고 사는 이 꽃이라고 한다. 1 촉은 1 W(와트) 1 룩스의 밝기이다. 일반 가정의 식탁이 보통 300~500 룩스의 밝기이니 십삼 촉이면 상당히 어둡다. 하얀색, 빨간색 그리고 분홍색…… 코스모스의 꽃잎은 색상이 선명하기로 유명하다. 그런데 시인은 왜 어둡게 봤을까.

게다가 코스모스를 고사모사(高士慕師)꽃이라 부르기를 청한단다. ‘고사모사(高士慕師)’가 무엇인가. 시 속에 밝히고 있듯이 뜻이 높은 선비는 / 제 스승을 홀로 사모한다는 뜻이다. 그러니 시인은 코스모스를 고사(高士) 즉 높은 뜻을 가지 선비로 보는 것이다. 시인은 그 근거를 제시한다. 다른 꽃들은 함부로 절을 하고 엎드리지만, 코스모스는 제 뜻을 높이되 / 익으면 익을수록 / 머리를 수그리는 꽃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어디 그뿐인가. ‘눈감고 사는 이 꽃은 / 여기저기 모여 피기를 꺼려 / 저 혼자 한 구석을 찾아 / 구석을 비로소 구석다운 분위기로 이루게 하는꽃이란다.

아 맞다. 길가에 나란히 피어 있다던가, 아니면 군락을 이루고 혹은 공원에 가을꽃 잔치를 위해 심은 코스모스 밭이 아니라 시인은 어느 시골 돌담 옆에 혹은 장독대 뒤편에 몇 송이 피어 있는 코스모스를 본 모양이다. 그러니 여기저기 모여 피기를 꺼려한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맞는 이야기이다. 골목길 돌담 아래 혹은 장독대 뒤편이라면 넓은 길가나 공원보다는 어두운 곳일 테고 그런 곳에 코스모스가 피면 얼마나 보기 좋은가. 구석을 구석다운 분위기로 만들어버리지 않겠는가.


사실 코스모스는 한창 피어날 때에는 고개를 빳빳하게 들고 있다. 가냘프기만 한 꽃대가 부러지지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할 정도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점점 고개를 숙이고 져버린다. 그렇다. 시인은 공원의 코스모스 밭이나 길 가에 무더기로 핀 꽃이 아니라 구석진 곳에 몇 송이 핀 코스모스를 보고 이런 판단을 한 것이다.


시인은 우리가 흔히 보아온 곳의 코스모스가 아니라 시인만의 특정 장소에 핀 꽃을 보고 코스모스를 예찬한다. 그러나 구석에 핀 것을 보고 그러냐고 탓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시인만의 독특한 명명으로 코스모스의 의미와 꽃말을 새롭게 정립한 것에 공감한다. 높은 뜻을 가진 선비, 그 선비가 사모하는 스승 - 어쩌면 시인은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사람을 그리워하며 코스모스를 봤는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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