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김길자의 <금꿩의 다리>

복사골이선생 2019. 1. 21. 12:45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 (214)



금꿩의 다리

 

김길자

 

산새들이 즐겨 노래하는

수목원에서

야리야리한 자줏빛 다리 가진

그녀를 만났다

 

누가 키웠을까

헌칠한 키에

다섯 폭 치마 힘껏 펼쳐 들고

꽃망울 터트리는 그 자태

 

고요가 흐르는 숲 속에

보랏빛 꽃잎에 노랑 꽃술로

아니,

노랑 꽃술이 꽃술 아닌 꽃으로

자신을 지키며 피는 것을

바람은 알았을까

 

 

금꿩의 다리는 미나리아재비과 꿩의다리속의 여러해살이풀로 중부 이북지방의 깊은 산골짜기 냇가나 산기슭 초원에서 자라는 한국 특산식물이다. 높이 70100cm 정도로 전체에 털이 없고 줄기는 곧게 서며 가지를 치고 보통 자줏빛이다. 78월에 연한 자주색 꽃이 피는데 꽃술이 노랗게 생겨 마치 금색 꿩의 다리와 닮았다 하여 이런 이름이 붙었단다. 뿌리가 강건하여 각종 토목공사에 의해 발생하는 절개사면에 토양 고정용으로도 식재한단다.

김길자의 시 <금꿩의 다리>는 이 꽃의 특징이라 할 노랑 꽃술의 아름다움을 그려낸다. ‘산새들이 즐겨 노래하는 / 수목원이란 말에 나타나듯 시인이 깊은 산 속이 아니라 수목원에 가서 이 꽃을 본 모양이다. 그러니 2연에서 누가 키웠을까라 한다. 그런데 수목원에서 야리야리한 자줏빛 다리 가진 / 그녀를 만났다고 한다. <금꿩의 다리>를 의인화하고 있는데 바로 이 꽃의 가느다란 줄기를 야리야리한 자줏빛 다리라 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이 꽃을 헌칠한 키에 / 다섯 폭 치마 힘껏 펼쳐 들고있는 모습으로 본다. 시인은 이 꽃의 줄기와 잎을 그렇게 본 것이다. 게다가 치마를 펼쳐들고 꽃망울 터트리는 그 자태라 감탄한다.

이런 감탄은 단지 줄기와 잎에만 그치지 않는다. 바로 노랑 꽃술에 대한 감탄이다. ‘고요가 흐르는 숲 속에 / 보랏빛 꽃잎에 노랑 꽃술로라고 말하려다가 시인은 잠시 멈칫한다. 단순한 꽃술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얼른 아니,’라 하고는 고쳐 말한다. ‘노랑 꽃술이 꽃술 아닌 꽃으로 / 자신을 지키며 피는 것이란다. 그냥 꽃술이 아니라 그 꽃술을 또 다른 꽃으로 보는 것이다. 게다가 자신을 지키며핀다고 하니 어쩌면 금꿩의 다리노랑 꽃술그 자체가 된다. 시인의 감탄이리라.

그런데 시인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금꿩의 다리가 노랑 꽃술로 또 다른 꽃을 피우며 자신을 지키는 것 - 이를 바람은 알았을까라 묻는다. 당연히 몰랐다는 말이리라. 바람이 금꿩의 다리를 키웠지만 바람도 노랑 꽃술이 그렇게 아름다운지는 예상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그만큼 금꿩의 다리노랑 꽃술이 아름답다는 말이 아니겠는가. 시인의 눈에 비친 금꿩의 다리그리고 노랑 꽃술’ - 혼자만 감탄하는 게 아니라 바람까지 불러들여 함께 감탄하는 모습에서 가히 그 아름다움을 짐작할 수 있다.


사실 마지막 행이 있기 전까지 그저 그런 금꿩의 다리예찬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평범할 수 있는 묘사가 시로 승화하는 것은 마지막 행이 있기 때문이다. 시인이 감탄하며 독자들에게 따라서 감탄하기를 강요하지 않고 슬쩍 바람을 불러낸다. 바람에게 너는 이 아름다움을 알고 있었니?’라 묻는 것이나 다름없다. 당연히 몰랐으리라. 바람도 모르고 있었다는 말은 그만큼 아름다움이 놀랍다는 뜻이다. 바람에 기대어 직접 감탄을 토로하지 않는 시인 - 바로 시인의 감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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