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신순애의 <깽깽이풀>

복사골이선생 2019. 1. 27. 15:20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 (216)




깽깽이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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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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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방울 떨어져도

따르르 굴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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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을 모른다고

서러움이 없을소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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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가분

엷은 치맛자락

차례차례 벗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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깽깽이풀은 매자나무과 깽깽이풀속의 여러해살이풀로, 한때 희귀식물로 분류될 만큼 흔하지는 않았는데 요즘은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의 산 중턱 아래의 골짜기에서 드물게나마 볼 수 있다. 주로 북쪽으로 터진 계곡 입구의 동향 사면이 주요 서식지로, 약간 습윤하고 반그늘인 곳을 좋아한단다. 꽃대는 높이가 20~30정도로 자라고 잎은 연잎처럼 긴 잎줄기에 달려 있는데 빗방울에도 연잎처럼 젖지 않는다. 근래 원예종으로 많이 보급되고 있는데 개화기간이 아주 짧다는 단점이 있다. 하지만 꽃이 아름다워 식물원에서는 관람 목적으로 이 풀을 식재한 곳이 많으며, 인공 번식에 성공해서 야생화를 취급하는 곳에서는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신순애의 시 <깽깽이풀>은 이 풀을 치마를 벗는 여인으로 묘사하고 있는 시조이다. 3 장을 3연으로, 각 연 2행에 3연만 3행으로 구성해 놓았다. ‘빗방울 떨어져도 / 따르르 굴러간다는 초장은 깽깽이풀 잎의 특성이다. 빗방울이 떨어지면 대부분 잎에 흩어져 머무는데 깽깽이풀 잎은 연잎처럼 물방울이 한 데 모여 굴러 떨어진다. 이를 따르르란 의성어로 밝게 표현해냈다.

초장의 시상은 중장에까지 이어진다. 잎에 구르는 빗방울을 시인은 눈물로 본다. 한 데 모여 굴러 떨어지니 눈물을 모른다고 했지만 그렇다고 서러움까지 없는 것은 아니다. 그 서러움이 뭘까. , 맞다. 짧은 개화 기간이다. 피어나 며칠이면 지고 마는 깽깽이풀 꽃의 일생 -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주변에 한껏 뽐낼 만한 자태도 이삼 일이면 사라지고 만다. 어찌 서럽지 않겠는가.

그런데 시인은 이를 홀가분 / 엷은 치맛자락 / 차례차례 벗을 뿐이라 한다. 분명 서러움이 없을소냐라 했으니 서러움이 있다는 뜻이고 그러니 그 서러움이 어떤 것이란 말이 있을 텐데, 시인은 오히려 담담하게 운명을 받아들이는 모습으로 보고 있다. 게다가 홀가분이라 했으니 개화한 이삼 일이란 기간이나마 어쩌면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치마를 벗는다고 하니 이상한 상상을 할지 모르나 시인의 눈에는 꽃잎이 그리고 깽깽이풀의 잎이 그렇게 지는 것으로 보였으리라.

언제였던가. 들꽃을 사랑한다는 사람들 뒤를 따라갔다가 운 좋게 만났던 깽깽이풀 - 내 눈에는 아름답다기보다는 조금은 처량하다는 느낌이었다. 일부는 이미 졌고, 무더기로 줄을 서듯 뒤늦게 피어 남았지만 가느다란 꽃대가 곧 부러질 듯 보였고, 자그마한 키에 보랏빛 색깔까지 왠지 모를 안타까운 마음이었다. 그래서일까. 신 시인의 시조 <깽깽이풀>을 읽다가 문득 그날 보았던 깽깽이풀이 떠오른다. 그래, 홀가분하게 엷은 치맛자락을 차례차례 벗고 있던 깽깽이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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