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정대구의 <억새꽃>

복사골이선생 2019. 1. 28. 18:11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 (217)




억새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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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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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양에 붉게 타는 그림자

그녀가 넘어간 오솔길 언덕배기 너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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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새 머리 허옇게 흰 그 남자

찬바람머리에 열심히 손을 휘저으며

금방이라도 따라잡을 듯

한쪽으로 온몸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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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손 엔간히 시리겠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버린 여인인데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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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러가던 구름이 잠시 멈칫

문자 메시지를 날린다

호호호 하하하

너 아직도 청춘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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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바닥에 까는 자리 이엉이나 가림막으로 쓰는 발의 재료로 활용되는 갈대와 달리 억새는 우리들의 실생활에 큰 쓸모가 없는 것이 사실이다. 예전에는 불쏘시개로라도 많이 썼지만 부엌이 개량된 지금 억새는 농촌에서도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는다. 억새는 전국 산야의 햇빛이 잘 드는 풀밭에서 큰 무리를 이루고 사는 여러해살이풀이다. 줄기는 마디가 있는 속이 빈 기둥모양이고 곧게 서며 키가 1~2m 정도 된다. 굵고 짧은 땅속줄기에서 줄기가 빽빽이 뭉쳐나는데 가을의 정취를 느끼게 해 주는 풀로 공원이나 산보길에 관상용으로 많이 심기도 한다.

정대구의 시 <억새꽃>에서는 이 꽃을 머리 허옇게 흰남자가 먼저 간 여자를 부르며 손을 휘젓는 모습으로 그려낸다. 산자락 혹은 들판에 하얗게 핀 억새꽃이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은 가을의 정취를 느끼게 해주는 멋진 풍광이다. 시 속 화자가 보고 있는 억새꽃은 석양에 붉게 타는 그림자 / 그녀가 넘어간 오솔길 언덕배기 너머이다. 가을 그것도 석양이 붉게 물드는 언덕배기이니 다소 쓸쓸한 느낌이 든다.

그런데 그 언덕배기에 어느 새 머리 허옇게 흰 그 남자 / 찬바람머리에 열심히 손을 휘저으며 / 금방이라도 따라잡을 듯 / 한쪽으로 온몸이 쏠리고 있단다. 여기서 어느 새 머리 허옇게 흰 그 남자는 중의적이다. 하얗게 핀 억새꽃이기도 하지만 글자 그대로 어느 노인, 화자일 수도 있다. 어쩌면 화자 자신을 억새꽃으로 환치시키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한쪽으로 몸이 쏠린다는 말은 바람에 따라 이리저리 휘어지는 억새 모습이고 이를 시인은 남자가 손을 휘젓는 모습으로 보고 있다. 누구를 향해 손을 휘젓는 것일까. 다음 연에 밝혀진다.


화자는 한 걸음 물러나 객관적으로 억새꽃 아니 손을 휘젓는 남자를 바라본다. 가을바람이니 그 손 엔간히 시리겠다고 한다. 그러나 손을 휘저어 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 왜냐하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 가버린 여인이기 때문이다. 떠나버린 여인 그것도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여인, 즉 이미 죽어 이 세상에 없는 여인이다. , 그렇다. 아내가 먼저 세상을 떴다. 먼저 간 아내를 그리워하며 아내를 향해 손을 휘젓는 머리 허옇게 흰 남자 - 사랑을 못잊어 아내를 향한 그리움을 그렇게 표현한 것이리라.

머리 허옇게 흰 남자의 이런 행동을 어떻게 봐야 할까. ‘흘러가던 구름이 잠시 멈칫 / 문자 메시지를 날린단다. 그 내용은 호호호 하하하 / 너 아직도 청춘이구나이다. 늙어 먼저 가버린 아내, 그 아내를 그리워하며 억새꽃으로 피어 아내를 향해 손을 휘젓는 남자, 다 늙어 머리까지 허옇게 흰 노인이 아내를 잊지 못하는 마음 - 이를 구름은 아직 청춘이구나하며 웃는다. ‘호호호 하하하란 의성어는 남자를 향한 구름의 웃음이다. 그러나 그 안에는 아내를 못잊는 남자에 대한 부러움이 담겨 있다.


머리가 허옇게 흰 늙은이, 그러나 먼저 간 아내를 그리워하는 사랑의 마음 - 부럽지 않은가. 사랑하는 데에 나이가 뭔 상관인가. 그것도 평생을 함께 살다 먼저 간 아내를 향한 사랑이니 더욱 그렇지 않겠는가. 시인은 시 속 화자가 되었다가, 억새꽃이 되었다가 다시 구름이 되어 자신을 바라본다. 어느 평자는 이시를 가리켜 정대구 시인은 죽음이라는 무거운 주제도 해학과 웃음으로 넉넉히 그려낸다고 했다.

맞다. 아내를 향한 그리움 - 억새꽃 하얗게 핀 언덕에서 시인은 지금 마치 청춘처럼 먼저 간 아내를 향한 사랑을 억새꽃으로 그려내고 있다. 갓 오십일 때 뵌 시인은 벌써 팔십을 훌쩍 넘기셨다. 맞습니다, 선생님, 아직 청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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