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정지용의 <따알리아>

복사골이선생 2019. 2. 4. 00:11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 (219)




따알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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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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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볕 째앵 하게

내려 쪼이는 잔디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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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빡 피여난 따알리아.

한낮에 함빡 핀 따알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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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약시야, 네 살빛도

익을 대로 익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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젖가슴과 부끄럼성이

익을 대로 익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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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악시야, 순하디순하여 다오.

암사심처럼 뛰어다녀 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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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오리 떠돌아다니는

흰 못물 같은 하늘 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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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빡 피어 나온 다알리아.

피다 못해 터져 나오는 다알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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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아(dahlia)’는 초롱꽃목 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로 멕시코 원산이지만 스웨덴의 식물학자인 다알(A. Dahl)’을 기념하기 위한 이름이다. 영국의 고고학자들이 이집트의 피라미드를 연구하던 중 한 여자 미이라를 발견했는데, 그 손에 꽃 한 송이가 있었고 공기와 접촉하는 순간, 그 꽃은 산산조각이 나면서 꽃씨가 떨어졌단다. 이를 영국으로 가져와 심었더니 싹이 자라서 꽃이 피었는데, 이 꽃을 재배했던 식물학자 다알의 이름을 따서 달리아라 불렀다고 한다. 외래식물이지만 현재 우리나라 전역에서 관상용으로 심으며 꽃은 7월부터 늦게는 11월까지 흰빛, 붉은빛, 노란빛 등 다양한 색상으로 핀다. 세계 각국에 원예용 품종이 300종류가 넘는다고 한다.

정지용의 시 <따알리아>는 이 달리아꽃을 성숙한 여인으로 그리고 있다. 꽃이름은 달리아지만 시가 발표되던 당시 표기로는 따알리아라 했고, 요즘에는 흔히 다알리아라 한다. 여름부터 늦가을까지 피는 꽃인데 시인은 가을 볕 째앵 하게 / 내려 쪼이는 잔디밭에서 보았던 모양이다. 시인은 함빡 피여난 따알리아라 하면서 다시 반복하여 한낮에 함빡 핀 따알리아라 강조한다. 이렇게 두 번 반복한 것은 꽃에 대한 시인의 감탄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시인은 단순히 꽃의 아름다움에만 감탄하지 않는다. ‘시약시야, 네 살빛도 / 익을 대로 익었구나에서 보듯이 시인은 달리아를 시약시’, 즉 색시로 보고 있다. 그것도 살빛이 익을 대로 익은 여인, 바로 젖가슴과 부끄럼성이 익은 여인이다. 바로 한껏 성숙한 그러면서도 요염한 모습이다. 그런데 시인은 그 다음 연에서 달리아 꽃에게 이상한 요구를 한다. 바로 순하디순하여 다오라 하면서도 이와는 반대로 암사슴처럼 뛰어다녀 보라고 한다. 순해지라면서 순한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 암사슴처럼 뛰라고 요구하는 시인의 마음, 어느 것이 진심일까.

실은 둘 다 진심이 아닐까. 많은 사람들이 볼 때에는 순하디순한, 서 있는 암사슴이지만, 둘만 있을 때에는 그 요염한 자태를 한껏 뽐낼 수 있는 뛰어다니는 암사슴이 되어 달라는 것이 아닐까. 다른 사람들 눈에는 그저 아름답기만 한, 곱고 순한 꽃이지만, 시인의 눈에만큼은 농염한 색시, 성숙한 여인으로 다가왔지 않았을까. 마지막 두 연을 보면 더 명확해진다. 바로 물오리 떠돌아다니는 / 흰 못물 같은 하늘 밑에, // 함빡 피어 나온 따알리아라 하는데 그냥 피어 나온 게 아니라 피다 못해 터져 나오는 따알리아라 한다.


우리의 가을 하늘이 얼마나 높고 푸른가. 거기 하늘에 흰 뭉게구름이 떠있다. 시인은 하늘을 못물로 구름을 물오리로 본다. 그 못을 배경으로 피어나는 꽃, 그러나 시인에게는 단순히 피어나는 꽃이 아니라 터져 나오는꽃이다. 분명 달리아란 꽃을 묘사하는데 눈앞에 그려지는 이미지는 달리아 꽃이 아니라 자태가 고운 그러면서도 지극히 농염한 여인이다. 혹 시인은 달리아를 보면서 어느 여인을 떠올리지는 않았을까. 아내를? 아니면 다른 여인을?


시인의 윤리성을 의심하는 것이 아니라 시인이 시 속에 그려놓은 대로 따라 가다보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곱디고운 그러면서도 요염한 여인의 모습, 아무리 시인이 시적 상상력을 발휘했다고 하더라도 이는 분명 달리아 꽃만을 그린 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달리아를 어찌 째앵’, ‘함빡’, ‘시약시’, ‘살빛’, ‘익다’, ‘젖가슴’, ‘터져나오다……에 연결하였을꼬. 그 상상력도 놀랍지 않은가.

그런데, 시를 다 읽고는 시인이 어떤 여인을 그리며 썼을지 자꾸만 궁금해지는 나는 아무튼 속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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