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허홍구의 <채송화>

복사골이선생 2019. 1. 23. 13:50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 (215)




채송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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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홍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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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뒤꿈치 한 번 들지 않았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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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 낮추어도

하늘은 온통 네게로 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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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타리 하나 세우지 않고도

꽃밭을 일구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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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망졸망

어깨동무 하고 사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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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송화(菜松花)는 남아메리카가 원산지로 알려져 있는, 중심자목 쇠비름과의 한해살이풀이다. 18세기를 전후해서 우리나라에 들어왔다는데, 이제는 마당의 구석이나 담벼락 아래 혹은 화단 맨 앞줄에 양지 바른 곳에 키우는 우리 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줄기는 붉은 빛을 띠고 가지가 많이 갈라져서 퍼지며 높이 20cm 내외이다. 꽃은 710월에 맑은 날 낮에 피며 오후 2시경에 시드는데 붉은색, 노란색, 흰색과 더불어 겹꽃도 있다. 한번 심으면 종자가 떨어져서 매년 자란다. 보석을 너무 탐낸 어느 여왕이 수많은 보석들과 함께 사라지며 형형색색의 채송화가 되었다는 전설이 전하는데, 그래서 꽃말이 가련, 순진, 천진난만이란다.

허홍구의 시 <채송화>에서는 이 꽃의 생태를 통해 삶의 지혜를 일러준다. 흔히 키가 작아 앉은뱅이꽃이라 불리는 채송화는 특별한 관심의 대상이 아니다. 그저 화단 맨 앞줄 혹은 마당 구석이나 장독대에 피어나 눈길을 끌지도 않는다. 그러나 시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키가 작은 외모를 보고는 발뒤꿈치 한 번 들지 않았다고 말한다. 작은 키를 감추려 일부러 발뒤꿈치를 들어 키를 높아보이게 만들지 않는다. 어쩌면 저만 잘났다고 떠들어대는 인간을 향한 비판일 수도 있다.

그러니 채송화가 몸 낮추어도 / 하늘은 온통 네게로 왔다고 하지 않는가. 부러 키가 큰 것처럼 하지 않아도, 저만 똑똑한 척 고개를 바짝 치켜들지 않아도, 그저 생긴 모습 그대로 몸을 낮추어도 하늘은 다 알고 있지 않겠는가. 그러니 시인의 눈에는 하늘이 온통 채송화에게로 왔다고 한다. 우리들에게 조금 더 겸손하라고 말하는 듯하다. ‘울타리 하나 세우지 않고도 / 꽃밭을 일구었다는 말은 편 가르고 집단을 만들지 않는다는 뜻이다. 채송화는 혈연, 지연, 학연으로 편을 가르고 자신들의 이익만을 추구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경계를 만들지 않고 모든 색깔의 꽃들이 하나의 꽃밭을 이루며 잘살아간다. 바로 더불어 잘 사는 모습이다.

그런 모습은 마지막 연에 다시 한 번 강조된다. ‘올망졸망 / 어깨동무 하고 사는구나가 바로 그것이다. 누가 훨씬 더 크거나 작지 않고 살림 형편도 거의 비슷하다. 흔히 말하는 도낀개낀이다. 이를 올망졸망이라 표현한다. 그런 꽃들끼리 네 편 내 편 가르지 않고 모두가 어깨동무를 하고 산다. 시인은 굳이 평등이라든가 화합이란 말을 하지 않는다. 대신 발뒤꿈치’, ‘울타리’, ‘어깨동무란 어휘를 통해 그 이상의 뜻을 풀어낸다. 바로 채송화의 생태가 굳이 그런 말을 하지 않아도 평등이나 화합, 즉 더불어 함께 잘 사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키가 작아 화단의 맨 앞줄에서 중앙의 화려한 꽃들을 받쳐주는 들러리 혹은 장식용으로 치부하는 꽃, 채송화. 그러나 시인은 이 꽃의 생태를 통해 우리들에게 삶의 지혜를 설파한다. 일반인들이 생각하지 못한 꽃의 생태와 관련된 지혜를 시인은 풀어낸다. 어느 평자의 말처럼 하찮아 보일 수도 있는 시 몇 행을 통해 몇 백 페이지짜리 처세술독본이나 인관관계서 이상의 인생철학을 가르쳐 주고 있지 않은가. 바로 시인에게는 우리와는 다른 예리한 시선 그리고 깊은 통찰력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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