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고정국의 <엉겅퀴>

복사골이선생 2019. 1. 17. 03:12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 (212)








엉겅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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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사리 야생의 꽃은

무릎 꿇지 않는다

빗물만 마시며 키운

그대 깡마른

반골의

식민지 풀죽은 토양에

혼자 죽창을

깎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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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겅퀴는 초롱꽃목 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로 가시가 많아 가시나물이라고도 하는데 한국, 일본, 중국 북동부 및 우수리의 산이나 들에서 자란다. 줄기는 곧게 서고 높이 50100cm까지 자라며 몸 전체에 흰 털과 더불어 거미줄 같은 털이 있다. 잎은 타원형으로 깃처럼 갈라지고 밑은 원대를 감싸며 갈라진 가장자리가 다시 갈라지고 깊이 패어 들어간 톱니와 같은 모양이다. 꽃은 68월에 피는데 자주색에서 적색 계통의 빛깔을 띤다.

고정국의 시조 <엉겅퀴>는 이 꽃을 깡마른 / 반골로 보고 있다. 초장에서 시인은 야생의 꽃은 쉽게 무릎을 꿇지 않는다고 전제한다. 즉 야생에서 핀 꽃 - 들꽃은 쉽게 항복하지 않는다는 뜻인데 바로 엉겅퀴를 염두에 둔 말이다. 먹는 것도 풍족하지 않은 들판, ‘빗물만 마시며 키운 / 그대 깡마른 / 반골의 / 라는데 이는 빈곤 속에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도 복수 혹은 혁명의 꿈을 키우는 무사와도 같은 느낌이 들게 한다. ‘반골의 뼈는 꽃이 아니라 엉겅퀴 줄기에 난 가시들을 일컫는 말이리라.


깡마른 반골의 뼈’ - 엉겅퀴는 시인의 눈에 식민지 풀죽은 토양에 / 혼자 죽창을 / 깎고 / 는 모습으로 보였던 모양이다. 엉겅퀴의 줄기가 반골의 뼈라면 톱니처럼 찢어진 잎이 죽창으로 보이지 않았을까. 여기서 식민지란 단어에 집착하여 일제 강점기를 생각할 수도 있으나, 이 시조에서는 특정 시대를 일컫는 말이 아니다. 뒤에 이어지는 풀죽은 토양과 연결하면, 엉겅퀴가 뿌리 내리고 있는 곳이 토양이 비옥하지 않다는 뜻으로 이를 식민지라 표현한 것이리라.

시 속에 등장하는 야생’, ‘반골의 뼈’, ‘죽창은 엉겅퀴의 이미지와 그대로 겹쳐진다. 그런데 이 시는 시조이다. 일반적인 정통 시조에 비해 글자 수는 조금 변형이지만, 그럼에도 크게 벗어나지 않으며 시행의 배열로 그 의미를 더한다. 36구를 단순하게 한 장을 두 행으로 전체 6행으로 구성했다면 반골이나 죽창 혹은 투사나 전사의 이미지와 겹쳐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전체 10 행으로 그대 깡마른 / 반골의 / 라든가 혼자 죽창을 / 깎고 / 있다3행씩 배열하여 반골이나 죽창의 이미지를 살려낸다. 바로 시인의 감각이다.


억센 가시가 몸 전체에 돋은 엉겅퀴, 이를 반골과 죽창으로 보고 있는 시인의 눈, 어쩌면 시인의 성정이 엉겅퀴와 닮지 않았을까. 즉 엉겅퀴를 반골이나 죽창으로 표현한 것은 시인의 감각이자 바로 시인 자신의 심성이다. 어쩌면 황무지와 같은 들판에 핀 엉겅퀴를 보며 시인은 식민지와 같은 황폐한 땅에서 배를 곯으면서도 기회를 엿보는 전사를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고려엉겅퀴의 잎은 웰빙시대를 맞아 곤드레나물이라 하여 건강식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 하긴 어린 시절 산과 들의 엉겅퀴 어린잎은 나물이었다. 그래서인지 엉겅퀴를 보면 나물이 떠오른다. 어려서부터 먹어온 것이라 그렇지 않을까. 그런데 시인은 엉겅퀴를 반골의 뼈 그리고 죽창으로 인식한다. 어쩌면 시인의 지사적 성정이 자연스레 나타났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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