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양문규의 <구절초>

복사골이선생 2018. 8. 20. 21:07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 (9)





 

구절초


양문규


환한 하늘이 꽃을 내리는가


천둥 번개 울다 간

천태산 여여산방


소담하게

꽃이 열린다


햇살, 햇살이

가장 환장하게 빛날 때


저 스스로 꽃을 던져

몸을 내려놓는


그 꽃무늬를

핥고 빠는 벌과 나비


툇마루에 웅크리고 앉아

가만 들여다보는데


미루나무 이파리 우수수

허공을 날며


돌아갈 곳이 어딘가 묻는다

 

 

양문규의 <구절초>를 읽으면 시의 제목이 꼭 구절초일 필요가 없을 것 같다. 그저 어느 꽃이름을 제목으로 삼아도 그림이 그려진다. 그러니 이 시를 이해하기 위하여 구절초가 어떤 꽃이고 언제 피며 어떤 모양인지를 세세히 알 필요는 없을 듯하다. ‘구절초가 아니라 개미취라도 좋고 쑥부쟁이라도 그림이 그려지기 때문이다.


시 전체 내용을 보면, 시인이 천태산 아래 집을 짓고(이를 시인은 여여산방(如如山房)’이라 명명하였다) 살았는데, ‘툇마루에 웅크리고 앉아뜨락을 보니 시인에게 미루나무 이파리돌아갈 곳이 어딘가묻고 있는 것처럼 느꼈고, 그 때 마침 뜨락에 피어 있는 꽃이 구절초였을 뿐이리라. 따라서 이 시는 구절초라는 꽃의 특성을 드러내고자 하는 것이 아니니 피는 시기가 같은, 뜨락에 피는 어느 꽃이든 커다란 차이는 없을 것이다.

 

<툇마루에 웅크리고 앉아 마치 오려 놓은 우주를 가만히 들여다보는 시인의 등에 언뜻 시간의 그늘이 비친다. 보일 듯 말 듯한 생애의 문양(紋樣)이 미루나무 이파리에 묻어 어디론가 날아가는 것을 본다. 시인이 옮겨놓은 구절초 풍경은 여여산방 마당에 맴도는 시간과 생명의 따듯하고도 상쾌한 긴장감을 느끼게 해 준다. 하늘과 시인과 구절초가 하나로 만나는 시간의 툇마루에서 우리가 돌아가야 할 곳이 어디인지 어렴풋이 보이는 듯하다.>

 

어느 시인이 이 시를 평한 글인데, 여기서도 구절초의 특성에 관해서는 아무런 말이 없다. , 양문규의 시 <구절초>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시 전체가 아우르고 있는, 시인의 눈에 비친, 그래서 시인의 마음이 그려낸 그림을 한 눈에 보면 된다. 그것은 바로 하늘, 햇살, , , 나비, 미루나무 이파리……가 그려내는 뜨락의 풍경과 우리가 혹은 내가 돌아갈 곳이 어딘가라는 자문에 스스로 답해보면 되는 것이리라.


주목할 것은 시인의 감각이다. 꽃이 피는 것이 아니라 열린다고 했고, 꽃이 피는 때를 시인은 햇살, 햇살이 / 가장 환장하게 빛날 때라 했다. 게다가 꽃이 피는 모습을 저 스스로 꽃을 던져 / 몸을 내려놓는다고 표현한다. 이런 감각 참 부럽다. 이쯤 이해하고 나면 독자들은 뜨락에 핀 꽃을 바라보며 그리고 날리는 이파리들을 보며 돌아갈 곳을 자문(自問)하는 시인의 사색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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