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김주애의 <탱자나무>

복사골이선생 2018. 8. 20. 21:10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 (10)




탱자나무


김주애


촘촘하게 가시를 품고

지나가는 바람도 걸러낼 것처럼

빈틈도 없어 보이는 탱자나무 속

참새 떼가 날아든다

그렇게 독하게 들이밀던 가시는 다 어디가고

저 느슨함이라니

제 집인 듯 폴랑거리며 날아다니는 저 날개 좀 봐

짹짹거리는 소리 가시 끝에 매달고

감히 손도 뻗지 못하게 감싸안는다

아무도 도망가지 못하게 독을 품은

벽인가 했더니

저렇게 쉴 곳 많은 빈곳 투성이라니

 

 

남도 여행길에 한적한 마을 울타리에서 만난 탱자나무는 내게 참 별스런 나무였다. 이런 나무에 탱자가 열린다 생각하니 어딘가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었다. 우선 눈에 들어오는 것이 온 몸을 감싸고 있는 가시들이었다, 집 주위 빙 둘러 울타리로 심어 누군가를 방어하기에 적당한 나무였다. 그 다음 눈에 든 것이 아름답기만 한 하얀 꽃이었다. 이 꽃이 지고 노란 탱자를 맺는다고 생각하니 꽃이 사랑스럽기까지 했다.


김주애 시인도 그랬던 모양이다. ‘촘촘하게 가시를 품고 / 바람도 걸러낼 것처럼 / 빈틈 없어 보이는탱자나무이지만 그 사이사이 참새 떼가 날아든다그러니 탱자나무의 가시란 참새에게는 그저 뾰족한 가지일 뿐이다. 이를 시인은 느슨함으로 파악한다.

결국 시인이 발견한 것은 탱자나무의 가시는 아무도 도망가지 못하게 독을 품은 / 이 아니라 실은 쉴 곳 많은 빈곳 투성이라는 사실이다. 나는 탱자나무 울타리를 외부인의 침입을 막는 울타리로 적격이라 했는데 침입은커녕 참새 떼에게는 시인의 말처럼 안락한 집터가 되고 있지 않은가. 시인도 놀라고 있다.

어느 시인은 이 시를 읽고 우리는 내 삶의 가시를 피해 내 품으로 들어올 새가 있는지, 노래가 있는지 탱자나무에 앉은 참새를 보며 헤아리게 된다고 했는데 그렇게 거창하게 해석하지 않아도 된다. 가시와 참새 떼를 통해 탱자나무를 새롭게 해석한 시인의 감각만으로도 이 시는 참 맛이 난다.

맞다, 우리들 가슴속에 혹 누군가를 향한 가시를 품지는 않았는지. 그러나 실은 그 가시와 아무 관계가 없는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그 가시들은 따뜻한 품이 되어버린다는 아이러니. 바로 우리들 마음이 그렇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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