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윤태수의 <능금>

복사골이선생 2018. 8. 20. 21:23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 (12)





 


능금


윤태수


()의 바람

()의 물이

그 속을 알까


베짱이

귀뚜라미

이슬이 알까


시리도록 푸르른

저 무변(無邊)

피멍울로 박혀있는

한 점의 순수

 

 

능금은 사과를 일컫는 우리말이다. 물론 토종 능금이 따로 있기는 하지만, 일반적으로 사과를 일컬어 예부터 능금이라 했다. 그런데 능금은 어떻게 클까. 윤태수의 시 <능금>은 그 해답을 제시한다.


수천 줄기의 바람과 수만의 물줄기가 키워냈다고는 하지만 바람과 물이 능금의 속을 알 수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바람과 물은 영양분만 공급할 뿐, 그것이 어떻게 변하여 능금을 키워냈는지는 능금 자신만이 아는 것이다. 배짱이, 귀뚜라미, 이슬도 마찬가지이다. 능금 옆에서 노래하고 습기를 주었지만 이 역시 능금이 나름대로 자신을 키우는 데에 활용했을 뿐일 것이리라.

푸르다 못해 시리다는 무변 - 그런데 능금이 무변(無邊)이란다. 무변이라니. 끝이 닿은 데가 없단다. 그만큼 각진 곳이 없이 매끄럽고 둥글다는 것이리라. 그 둥근 모양 안에 피멍울로 박혀 있는 / 한 점의 순수’ - 그 순수가 바로 능금이라는 것이다. 이는 바람, , 배짱이, 귀뚜라미, 이슬……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하나의 생명 능금. 그 생명을 키운 것은 바람과 물과 배짱이, 귀뚜라미 그리고 이슬이라지만 그들은 능금이란 생명의 신비함을 모른다. 능금은 제 스스로, 제 빛과 향에 알맞은 생명을 키워내는 것이기에 그렇다. 우리 인간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그래서 생명은 신비로운 것이다.

윤기 좌르르 흐르는 매끄러운 능금의 모양을 보며 윤태수 시인은 생명의 신비함에 감탄을 했던 모양이다. 시를 읽으면 나도 그렇게 느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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